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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3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301 - 32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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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제국일본과 미국의 ‘인형교류’와 식민지조선에서 이루어진 ‘인형환영회’를 통해 신민화의 단면을 고찰하였다. 1927년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인형의 국제교류는 중국, 조선, 만주를 비롯하여 후에는 핀란드, 헝가리, 프랑스, 독일, 브라질 등 서구국가로까지 확산되어 인형의 국제교류가 문화행사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형교류의 발생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는 1924년 5월 일본인의 이민을 실질적으로 저지한 미국의 ‘이민법’ 개정이다. 이로 인해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자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 ‘인형교류’였다. 둘째는 1차세계대전 이후 완구 시장의 경쟁자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화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일본의 전략이 내재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성립된 ‘인형교류’는 식민지배하에 있던 조선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이 바로 ‘인형환영회’이다. 그렇다면 왜 ‘인형’이었을까? 일본은 메이지기에 들어 인형을 단순한 ‘장난감’에서 빠르게 ‘상품’으로 변환시켰다. ‘인형’은 자포니즘의 유행과 대량생산에 힘입어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서 입지를 굳혔으며 일본의 천황에 대한 존외심을 키운다는 ‘교육적 효과’가 강조되면서 그 효용성은 극대화되었다. 미국 역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형산업의 발전으로 일본과 세계완구시장의 패권을 겨루고 있었기에 양국에서 ‘인형’은 손쉽게 교류가 가능한 상품이었다. 또한 어린이의 순수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품목이며 사람을 대신하여 국가를 방문하는 ‘사절’의 역할을 하는데 적당한 것이 인형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미국의 ‘인형환영회’는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들 수 있다. 문부성과 외무성의 지원으로 민간차원의 인형교류를 국가적 차원으로 업그레이드 시킴으로써 당시 손상된 일본인의 자존심을 회복시킨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국가를 대표하는 ‘평화사절’로서 인형을 격상시켰다는 점이다. ‘특별면장’을 갖고 일본에 온 미국인형을 마치 외교관을 맞이하듯이 대접하여 ‘인형’은 국가를 대표하는 표상체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일본에서는 국가원수 방문 때 종종 일본의 인형이 선물되어 상품의 위치를 초월하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인형은 조선에도 배포되는데 ‘훌륭한 나라’인 미국에서 보내는 선물을 베푼 것은 ‘내지 일본’으로 인형이 상업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식민지조선에 일본의 인형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화강국으로서의 모습을 조선에 과시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행사를 통해 못난 조선인이 일본어를 매개로 우수한 여학생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부각시켜 일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인형교류는 후에 미국인형을 일본의 ‘히나인형’으로 치환하여 천황에게 충성하는 일본의 국체관을 이입시키려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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