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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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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EU연구소 EU연구 EU연구 제34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35 - 15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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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합을 바라보는 기능주의적 혹은 정부간주의적 시각에 대한 관심은 유럽연합 건설 과정을 이끌었던 또 다른 이데올로기 및 행위자인 연방주의(federalism)와 유럽통합을 위한 초국가적 연방주의 대중운동조직의 역할을 최소화하도록 만들었다. 본 연구는 유럽운동의 전략과 압력활동을 통해서 유럽통합 과정이 엘리트 관료 및 정치인들의 활동 주변에 있던 유럽연방을 후원하는 유럽 시민사회조직(Civil Society organizations)인 초국가적 연방주의 대중운동조직들의 적극적인 로비와 압력과 함께 진행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EM은 1940년대 말 유럽평의회가 탄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1950-60년대에는 드골의 등장, 영국의 공동체 가입 실패, 기능주의의 성공 등 때문에 많은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EM이 다시 자신의 활동공간을 찾은 것은 1970년대 유럽의 내적, 외적 상황 변화 속에서 나타난 통합의 위기였다. 이 속에서 EM은 쉔델이라는 열정적 연방주의자의 지도에 힘입어 UEF와 MFE를 재화합시키고 EM과 연계시켜 EM보다 연방주의적이었던 UEF를 전위대로 삼아 유럽의 진전된 통합을 위한 선전활동을 시작했다. EM은 또한 기존까지 EM이 수행했던 정치지도자 혹은 각 정부에 대한 청원으로는 유럽의 연방화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활동의 급진화를 꾀했다. 즉, 보다 더 강력한 청원활동과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았다. EM이 선택한 것은 1974년부터 정기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던 유럽이사회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EM의 이러한 전략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EM은 UEF 및 MFE와 협력해서 1980년대 초 스피넬리의 유럽연합 조약안을 각 회원국들이 비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비록 그들의 노력은 실패했지만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유럽통합의 연방주의적 발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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