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슬라브硏究 슬라브硏究 제24권 제1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54 - 72 (1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러시아 자유주의는 예까쩨리나 여제의 통치 초기 그녀의 친(親)계몽주의적 입장과 А. Н. 라지스췌프의 천부적 자유(вольность)를 바탕으로 한 자유애호(свободолюбие) 사상이 그 연원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여제의 친계몽주의 사상과 라지스췌프의 자유애호 사상은 모두 서구에서 중세의 신분적 계급제도의 붕괴와 더불어 싹튼 개인의 자유(свобода), 즉 개인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바로 이러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근대 서구 부르주아 시민혁명의 정치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는 등장했으며, 이 자유주의가 18세기 후반 및 19세기 1/4분기에 러시아에 강력한 지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1/4분기 동안까지 제정 러시아의 정치ㆍ사회 현실 속에서 서구식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러시아 자유주의는 입헌군주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예까쩨리나 여제는 ‘입법위원회’와 ‘훈시’를 동원하였고, 알렉산드르 1세는 ‘비공식 위원회’와 ‘М. М. 스뻬란스키’를 동원하였다. 그러나 이들을 통한 자유주의 개혁은 모두 두 군주의 통치권 손상을 우려하는 우유부단함과 기득권을 지키고자하는 귀족계급의 반발로 성과를 보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 러시아에서 서구의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입헌주의적 자유주의 개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군주의 우유부단함이나 귀족들의 반발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서구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러시아 정치문화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는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와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환언하면 러시아의 경우 모든 면에서 집단보다는 개인이 우선시 되는, 서구와는 반대로 언제나 개인은 집단에 묻혀버리고 항상 개인보다는 집단, 즉 공동체가 우선시되는 정치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고찰할 때 러시아에서의 서구식 자유주의 개혁은 예까쩨리나 2세 시대는 물론 알렉산드르 1세 시대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역사진행의 변두리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