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학
예술체육학
복합학
개인구독
소속 기관이 없으신 경우, 개인 정기구독을 하시면 저렴하게
논문을 무제한 열람 이용할 수 있어요.
지원사업
학술연구/단체지원/교육 등 연구자 활동을 지속하도록 DBpia가 지원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전문성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킹 공간이에요.
초록·키워드
본 논문은 조선후기 중앙 군영의 군사편제와 그 변화 양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세부적인 편제를 밝히기 위해 조선후기 군사제도 변화의 출발이며 동시에 기준이 되었던 훈련도감의 편제를 중심으로 하여 어영청, 금위영 등의 편제를 시기별로 함께 소개하였다. 임진왜란 초기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패한 조선은 1593년 초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 명나라 군이 선보인 새로운 전술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전술이 일본군을 격퇴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조선은 이후 조선군의 편성과 훈련을 ??기효신서??의 내용에 따라 변화시켰다.
17세기 초부터 북방 여진의 위협이 심각해졌다. 이에 조선은 여진 기병에 대응하기 위해 기병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기병과 보병, 전차 등을 통합한 전술을 고안하였다. 예를 들어 수도권 방어를 위해 총융청이 창설되고 국왕의 호위 강화를 위해 어영청이 창설되었다. 포수를 중심으로 살수, 사수를 충실하게 갖추고 마병을 추가 편성한 체제를 갖춘 조선의 군영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여러 전투에서 그 편성의 유효성을 잘 보여주었다. 병자호란의 여러 전투를 통해 조총이 궁시보다 더 유용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포수 위주의 전술 모색은 포수 중심의 군사 편제로 나타났다. 17세기 후반 청의 위협도 축소되고 북벌 추진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군영의 감축이 이루어졌다. 이에 훈련별대와 정초군을 1682년 병조판서 김석주의 건의로 통합하여 새로운 군영인 禁衛營이 창설되었다. 금위영 창설로 이른바 5군영제가 확립되었다.
17세기 기간 동아 이루어진 여러 군영의 창설과 변화 양상은 임진왜란 이후 급변하는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전쟁 양상에 대한 조선의 군사적 대응이 상당히 적극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조선후기 군영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정치제도 또는 군사제도의 일환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16세기 말 이후 18세기 중반까지 계속되는 유동적인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한 조선의 대응을 보여주는 사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본문·목차
인공지능 문자 인식 모델을 통해 추출된 텍스트로, 일부 오타나 오류가 포함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개선 중입니다.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