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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중앙문화재연구원 중앙고고연구 중앙고고연구 제10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99 - 151 (5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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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근세사회의 농법과 수리시설의 변화, 발달과정 등을 문헌 자료 검토와 발굴보고서 분석을 통해 정리하였다. 고려시대의 경지이용방식은 文宗代 田品 규정에서 볼 때1년 또는 2년 休閑法이었다. 벼 경작법이 고려말에 이르러 休閑法에서 連作法으로 변화발전하였다. 고려후기 한전경작법은 1년 1작의 연작법이었다. 고려시대 경작유구의 사례에서 여러가지 밭작물을 두둑을 중심으로 경작하고 있었던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수리시설 관련 기록은 12세기부터 집중적으로 나오는데, 新田 開墾과 벼재배 비중이 확대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려의 수리시설은 洑, 堤堰, 河渠, 防潮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경상도 양산 지역의 黃山堰의 경우 황산역 주변에 대한 治水 사업과 田畓의 보호를 위해 만든 제방이었다. 尙州 恭儉池의 경우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에 걸쳐 제방의 增築, 補築, 改築이 계속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의 벼 재배법은 水耕과 乾耕, 그리고 挿種 즉 移秧이었다. 이앙법은 16세기를 거치면서 경상도 전역과 전라도·충청도의 일부 지역으로 보급되었다. 그리고 15세기에 밭에서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1년 1작 방식이었다. 조선시대 자기편, 도기편과 함께 출토된 밭유구에서 밭의 구조와 조성방식의 특색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수전의 경우 경지 표면의 水平을 잘 유지하는 방식으로 조성되었고, 습지의 개간은토양의 개선, 토양의 첨입 등이 필요하였다. 조선 전기의 水利 정책은 堤堰, 川防 등 수리시설의 축조와 관리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水田이 크게 증대하면서 수리시설의 필요성이 커졌다. 김제 碧骨堤의 경우 방조제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石柱와 木板으로 貯水하는 제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밀양 守山堤의 경우 水沈, 沈沒과 같이 강물이 넘쳐 물에 잠기는 피해를 막기 위한 용도의 제방이었다. 조선 후기 농법 발달의 대표적인 것은 水田 移秧法의 보급 확산이었다. 숙종 초반 17세기 후반에 이르게 되면 삼남지역에서 이앙법이 전면적으로 채택되고 있었다. 그리고 16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밭작물을 1년에 두 번 경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7세기 이후로 추정되는 水田 유적에서 농경활동의 흔적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밭유구에서 두둑, 고랑, 식재흔적 등을 세밀하게 밝힐 수 있다. 조선 후기에도 堤堰과 川防을 수리시설로 이용하였는데, 조정은 새로운 堤堰과 川防의축조, 그리고 기존 수리시설의 관리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洑의 중요성이 강조되여 開洑(洑의 개설·축조)를 강조하였다. 華城城役과 관련된 萬石渠의 경우 水口를 만들고, 남쪽水路 입구에 水閘을 설치하였다. 앞으로 여러 지역의 많은 수리시설에 대한 발굴조사와 현황 파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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