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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본 논문은 계미사행시의 한일양국간 필담창화가 混沌社라는 關西지역 詩社의 창립과 융성에 영향을 미쳤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계미사행이 混沌社에 미친 영향을 밝히고자 하면서도 이에 앞서 木村巽齋(=木世肅, 木孔恭)와 蒹葭堂會에 대해 언급한 것은 蒹葭堂會가 混沌社의 모체가 되었고, 蒹葭堂會를 이끈 木村巽齋가 片山北海(=片猷)와 함께 混沌社의 흐름을 주도했음을 고려한 때문이다.
계미사행 이전은 물론 계미사행의 귀국 이후에도 국내의 어떤 문헌에도 混沌社를 언급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木村巽齋와 蒹葭堂會에 대해서는 계미사행의 문사들과 이들과 교유했던 박지원과 이덕무 등의 문집에 비교적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는 계미사행 이후로는 江戶로 가는 통신사행이 단절되었으므로 조선의 지식인들이 關西지역 지식인들의 동향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계미사행시 大阪 객관에서 필담창화를 나눈 蒹葭堂會의 멤버들이 그대로 混沌社의 창립을 주도하고 이끌었기 때문에 양자간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본 논문에서는 계미사행이 귀국한 지 2년이 지난 1766년 5월에 木村巽齋등이 ‘전례 없이’ 對馬島와 倭館을 거쳐 詩札을 보내온 것에 주목하면서, 이는 蒹葭堂會가 발전적으로 해체된 후 混沌社로 출범하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이러한 추정을 구체적으로 입증해보고자 했다. 본 논문에서 筑常과 木村巽齋 등이 1766년 5월 南玉 등에게 ‘전례 없이’ 詩札을 보내온 사실에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계미사행의 문사들과 蒹葭堂會의 멤버들은 모두 학문적으로 程朱學을 존숭하고 徂徠學에 비판적이었다는데 공통점이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학문적, 사상적인 동질감은 이들로 하여금 필담창화를 통한 문학적 교유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하였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蒹葭堂會의 발전적 해체와 混沌社의 창립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계미사행시 남옥등과의 필담창화와 교유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那波師曾은 물론 柴野栗山, 尾藤二洲, 古賀精里 등이 모두 程朱學을 존숭하고 徂徠學에 비판적이었고 이들에 의해 이른바 ‘寬政의 學制改革’이 이루어졌음은 이미 밝혀진 바 있다. 본 논문에서는 混沌社의 창립은 물론, 混沌社의 멤버였던 柴野栗山, 尾藤二洲, 古賀精里 등에 의해 주도된 ‘寬政의 學制改革’ 역시 넓은 의미로 볼 때, 계미사행시의 필담창화를 통한 양국문사간의 문학적 교유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蒹葭堂會의 주축이 된 인사들이 程朱學을 존숭해왔기 때문에 역시 程朱學을 존숭하는 계미사행단과의 접촉에 적극적이었는지, 아니면 계미사행단과의 접촉이 徂徠學을 비판하고 程朱學을 존숭하는 경향을 강화시킨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것은 본 논문의 한계인 동시에 앞으로 밝혀내야 할 주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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