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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39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63 - 18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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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신앙은 일찍이 불교가 수용된 시기부터 있었으며, 제석천이 본래 갖고 있는 무신, 군신의 성격으로 인해 고려시대에 호국 선신으로서 성행하게 된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그 신앙은 이어져왔으며, 그 결과로 제석천에 관한 도량과 각종 의례들이 생겼다. 이에 제석천을 주불로 한 그림이 법당을 수호하는 성격의 신으로 봉안되기 시작한다. 남아있는 제석천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은 고려시대의 것이고,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끊임없이 그 형태가 변화하면서 그려져 왔다. 고려시대에는 국가를 외호하는 목적으로 제석천이 주 측이 된 각종 도량이 개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비록 그 의미가 축소되긴 하였으나 여전히 사찰을 외호하는 신으로서 나타난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제석천은 사찰을 외호하는 의미 이외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기복적 신앙의 주체로서도 나타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상용의식집인 제반문류 의식집에서 「제석청」 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에서 호국안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런 의식집에서 나타나는 석천은 의식의 장엄역할로서, 법당을 수호하는 수호신격으로서 사찰 안에서 불상, 벽화, 불화 등으로 나타났으며, 법당 바깥에서는 사찰의 사역을 외호하는 역할로서 사찰의 정문 등에 그림으로 그려져 걸리게 된다. 제석천은 사찰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특히 제석천도에서 주불이 되어 나타나는 유일한 도상으로 다른 불화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가부좌를 틀거나 있는 다른 여래나 보살도와 달리 당당하게 다리를 벌리고 정면향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의좌상 형태라는 점이다. 양대 전란 이후 화엄 신중신앙이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제석천도는 한 폭 안에서 두 개의 화면으로 나뉘어 천룡도와 함께 조성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제석천룡도 형식은 18 세기 중엽부터 19 세기 초까지 잠깐 등장하며 이후 18 세기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석천도 단독의 그림보다는 화면 상단에 제석천이 범천과 짝을 이루어 배치하고, 중․하단에 팔부신중들이 그려진 신중도 형식의 그림이 거의 대부분을 이루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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