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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2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23 - 25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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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甘肅省에 있는 敦煌에는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진 불교미술의 원형과 전개과정을 잘 보여주는 敦煌石窟이 있다. 4세기 중반 경부터 14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석굴에 조성된 불상과 벽화는 돈황 지역의 역사적 · 정치적 변화, 그리고 종교상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法華經』의 한 品이자, 관세음보살 신앙의 중심이 되는 「普門品」을 圖解한 普門品變相이 돈황석굴에서 출현하고 변화하는 과정과 특히 唐代 석굴인 217굴과 45굴에 나타난 보문품변상이 漢譯된 『법화경』의 여러 본 중 특정한 경전을 典據로 하여 도해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하였다. 『법화경』은 여섯 번 한역되었고 그 가운데 세 본이 현존한다. 晉 竺法護(231~308?)의 『正法華經』10권 27품과 鳩摩羅什(344~413)의 『妙法蓮華經』7권 28품, 그리고 闍那崛多(523~600)와 達磨笈多(? ~ 619)가 共譯한 『添品法華經』7권 27품이 현존한다. 이 중 사나굴다와 달마급다가 함께 번역한 『첨품법화경』은 의 축법호와 구마라집의 두 본을 비교 · 검토하면서 완성하였다고 하는데, 두 본 중 구마라집본과 유사성이 크다. 보문품변상도이 돈황석굴에 처음 벽화로 가시화된 것은 수나라 때이며, 당시 法華經變相의 일부로 그려졌다. 唐代, 특히 盛唐代 보문품변상은 法華經變相에서 독립하여 단독으로 그려졌으며, 217굴과 45굴에서 그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굴 가운데 217굴은 돈황의 명족 陰家가 발원한 석굴로 알려져 있으며 중원지역 벽화와의 연관성으로 인하여 중원 사찰의 최신 경향을 받아들인 근거로 제시되었다. 217굴에 도해된 諸難救濟 장면은 축법호가 한역한 『정법화경』 「보문품」에는 없고, 구마라집의 『법화경』 「보문품」에만 보이는 偈頌에 있는 내용이어서 주목된다. 즉 돈황석굴 성당대 보문품변상도는 구마라집의 「보문품」에서 전거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45굴에서는 관세음보살을 중앙으로 크게 배치하여 강조하였으며 그 주위로 관세음보살의 應身장면과 제난구제 장면을 도해하였다. 특히 제난장면은 217굴과 같이 「보문품」 장행의 재난구제 장면 뿐 아니라 게송의 제난장면을 도해하였으며 소그드상인이나 당대 여인의 모습에서는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장면도 두드러졌다. 성당대 이후 보문품변상 은 다시 법화경변상의 한 품으로 등장을 하거나 제난구제 장면도 축소되어 나타나고 있어 보문품변상은 성당기에 가장 독자적으로 회화화되었고, 이러한 점은 217굴과 45굴에서 예에서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구마라집이 한역한 『묘법연화경』이 탁월한 문학성으로 한역 󰡔법화경󰡕 가운데 가장 유행했다고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돈황의 석굴벽화 역시 구마라집본 한역본이 전거가 되어 회화화 되었다는 것은 경전의 유행과 도상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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