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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인하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8권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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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은 ‘한국이 최초로 서양 국가와 맺은 조약’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무엇보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전후 한 ‘혼돈’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미국과의 국가 간 외교관계 구축은 문호개방기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어렵고 힘든 과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적 ‘기회’의 하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 전략적 방향성에 내포된 치열한 고민과 국가적 독립성 확보 및 국제정치적 시야의 확대, 그리고 국가 근대화를 위한 실천적 노력의 전개 등 나름의 성과 역시 중요한 것이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의 또 다른 중요성은 한국(민)과 미국(민)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차원에서 미국이 국가적 독립성의 유지와 국가발전을 위한 중요한 전략적 대안이었다면,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는 은둔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탈피하여 미국(민)을 알게 되는 시작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에게도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이 향후 대한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토대가 되는 동시에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이해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점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은 좁게는 한미관계의 출발점인 동시에 넓게는 ‘혼돈과 새로운 기회의 모색’이라는 한국 근대사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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