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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5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61 - 29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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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주불전 맞은편에 조성되어 현존하는 루는 조선후기 가람배치를 특정하는 건축물이다. 불전도 아니고 요사채도 아닌 루에 대해 막연히 강당이라 하기도 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의례공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기록을 통해 루의 기능을 살펴, 의례 외에 여러 목적으로 활용된 다용도공간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즉, 조선후기 주불전 맞은편의 루는 기본적으로 하단의 의식공간이자 의식에 필수적인 종이 있는 종루였는데, 표충사우화루는 의식에 참여하는 대중들의 식당, 전등사대조루는 비와 더위를 피하는 곳인 동시에 사무공간, 선운사 만세루는 곡식 저장소, 동화사봉서루 등은 강당, 낙산사빈일루 등은 경치를 감상하는 곳으로도 활용되었던 것이다. 조선후기 사찰 루는 15 세기에 조성된 왕실원찰의 종루에서 비롯되었다. 이때 루는 정문에연결되어 있었는데 해인사와 낙산사·관룡사는 19 세기까지 이러한 모습이 유지되었다. 일반사찰에서는 16 세기 들어 루가 조성되기 시작했는데 규모는 정면 3 칸에 불과했다. 17 세기 들어서는 전란과 기근·전염병 등의 재해를 겪은 후, 수륙재로 대표되는 천도재 수요가 늘면서 루조성이 빈번해졌다. 이 당시 루의 형식은 대체로 정면 5 칸에 익공형식으로 조성되었다. 이러한 루의 기능과 모습은 19 세기 중반 무렵 바뀌었다. 근기지역 사찰에서는 루자리에 루방이 들어서고, 루에 봉안되던 감로도가 법당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일반백성에서 왕실 및 상궁 등 고위층으로 사찰후원계층이 바뀐대서 초래된 이러한 변화는 일반사찰의 루가 실내공간화 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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