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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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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연구 동양한문학연구 제52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5 - 4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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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의령지역에서는 18세기 영조 이후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여 19세기에 이르면 남인이나 노론계열에서 학자들이 대거 배출되었다, 그 중에서도 노론(老論) 계열로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ㆍ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圭)로 이어지는 노사학맥(蘆沙學脈)을 계승한 입암(立巖) 남정우(南廷瑀)와 이천(夷川) 남창희(南昌熙) 등이 크게 두각을 나타내었고, 안악 이씨 가문의 우산 이현오도 노사학의 전파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의령의 안악이씨는 일찍이 노사 기정진으로부터 서문을 받아 족보를 간행함으로써 일찍부터 노사와 인연이 있었다. 우산의 부모 역시 아들의 학문성취를 위해 당대 노사학의 종장 노백헌에게 보내 수학하게 하였고, 노백헌 역시 우산이 자신과 호남의 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를 계승할 인물로 기대하고서 학문에 대한 정밀성과 사변의 폭이 깊어지도록 지도하였다. 노백헌의 가르침을 받은 우산은 이후 영남이나 호남지역의 동문은 물론, 멀리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등 화서학파(華西學派)와도 관련을 맺게 되었다. 그는 노백헌으로부터 수학한 공부를 바탕으로 위정척사(衛正斥邪)에 대한 신념을 높여 갔으며, 노백헌 사후 강학과 학문활동에 전념함으로서 노사학이 의령지역에 널리 퍼져가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우산이 이해한 노사학은 노사의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에 기초를 둔 이기론이었다. 다만 심성론에서는 1870년대 이후 노백헌이 한주문인과 토론을 거쳐 수용한 심즉리설을 수용한 형태였다. 노사는 기호학의 전통에 따라 심의 기 측면을 중시하였지만, 노백헌은 노사의 이일분수설을 확장하여 심성론에서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영남지역에서는 노사학맥과 한주학맥과 관계가 깊어지게 되었고, 노사ㆍ노백헌을 정점으로 하는 도통의 계보도가 그려지었는데, 우산의 경우도 의령에서 그러한 학설의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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