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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성순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8집
발행연도
2019.11
수록면
39 - 7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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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제1차 세계대전과 한국독립운동 방략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기존에 많은 연구 업적이 축적된 신한청년당 위주 연구의 외연을 좀 더 확장시켜 보려고 한 것이다. 파리강화회의가 전개되자 신한청년당에서는 김규식을 한인대표로 파리에 파견하는 한편, 국내·일본·만주·연해주 등지에 특사를 파견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인 독립운동 세력의 결집을 유도하였다. 그중에서도 이런 활동의 결과가 만주지역에서는 어떻게 결론지어졌는지를 검토한 것이 본고의 핵심 내용이다.
우선 주목한 것은 신한청년당의 특사로 만주에 파견된 여운형이나, 경술국치 이후부터 상해 지역 독립운동의 대부로 군림하던 신규식의 밀지를 받고 길림으로 파견된 정원택이 만주 독립운동세력의 결집을 위해서 접촉했던 핵심 인물이 모두 여준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검토 결과 이는 여준이 단순히 연장자라서였다기보다는, 신흥무관학교와 부민단, 그리고 생계회를 통해서 여준이 갖고 있던 길림지역에서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여준은 이들의 요청에 부응하여 곧바로 대한독립의군부를 결성하고 총재에 추대되었다. 대한독립의군부는 해외에 산재한 명망있는 독립운동가 39인을 대표로 하는 「대한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세계 각지에 발송함으로써 무장 항일 독립투쟁의 의지를 동포들에게 천명하였다. 그리고 즉시 의군부를 길림군정사로 재편하여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당장에 일제와의 무력항쟁에 나설 수 없었던 군정사는 우선 김원봉을 앞세워 소규모 작탄투쟁을 수행할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파리강화회의를 후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개되었던 신한청년당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단순히 2·8독립선언과 3·1운동을 거쳐 임시정부의 수립에만 그쳤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민회로부터 잉태된 독립전쟁론의 의지를 양성한 신흥무관학교 세력과 연결됨으로써 대한독립의군부-길림군정사를 거쳐 의열단과 서로군정서와 북로군정서를 필두로 하는 한국 독립전쟁의 감격적인 역사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만주지역 대한독립의군부의 성립
3. 여준과 신흥무관학교의 위상
4. 대한독립의군부의 길림군정사로의 재편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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