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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연민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7호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65 - 9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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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기 중기밀교를 수용한 신라 유학승 8명을 분석했다. 8세기 전반은 현초 · 불가사의 · 의림 · 혜초가 있었다. 앞 3인은 선무외에게 태장계를 사사했고, 혜초는 금강계를 상승했다. 현초는 양부회통의 단초가 됐으며 불공과 함께 중기밀교 2조에 위치한다. 불가사의는 한역『대일경』의 주석을 완성했다. 서명의 영묘사는 귀국 후 『공양차제법소』를 편찬했음을 암시한다. 724~735년 사이 입당한 의림은 중기밀교를 신라로 전래했다. 혜초는 금강지를 사사했지만 불공에게 전법관정을 받아 그의 6대 제자가 됐다. 이는 밀교 전성기 혜초의 위상을 반영한다. 불공은 교단의 영향력을 드러내기 위해 6대 제자 중 혜초만 국적을 밝혔다.
781년(선덕왕2) 혜일과 오진은 혜과를 사사했다. 혜일은 새로운 사상경향이었던 회통된 삼부밀교를 신라로 들여왔다. 반면 오진은 태장계에 더 관심을 가졌고 그 근원을 찾아 중인도로 향했다. 그는 치송데젠의 불교 진흥에 따라 티베트까지 이르렀고 789년 그곳에서 입적했다. 9세기는 균량과 홍인이 있었다. 균량은 금강계만 선택했다. 그는 흥덕왕대 화엄결사인 춘추지사를 주관했으므로 밀교와 화엄을 겸학한 경우이다. 이름과 국적만 전하는 홍인은 법전에게 양부를 상승했다. 유학기조가 선종으로 전환된 때에도 밀교승려의 유학이 이어졌다.
8세기 전반 유학승이 가장 많고 혜일 · 오진이 혜과의 2 · 3번째 제자였던 점은 중기밀교에 대해 신라밀교가 기민하게 반응했음을 말해준다. 밀본 · 명랑 · 혜통의 밀교와 교학불교의 발전은 중기밀교 수용의 사상적 밑바탕이 됐다. 이들은 태장계에 더 관심을 보였다. 선무외 제자들은 인도와 차별되는 동아시아 밀교의 태장계 전승과 양부상승 전통을 세우는데 기여했다. 한편 당과 일본은 중기밀교를 기반으로 종단이 성립했으나 신라는 아니었다. 신라 유학승에게 법맥은 교학보다 우선되지 않았다. 혜통의 스승으로 선무외가 부회되고 신인종 법맥에 용수가 있는 것은 중기밀교의 영향이다. 유학승들은 이미 신라밀교에 속해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8세기 전반 유학승
Ⅲ. 8세기 후반 유학승
Ⅳ. 9세기 유학승
Ⅴ. 유학승의 법맥과 의미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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