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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나나 (문화재청)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39號
발행연도
2020.2
수록면
189 - 218 (30page)
DOI
10.14769/jkaahe.2020.02.39.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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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병은 궁궐 정전과 편전,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봉안하는 진전, 능의 침전 등에 설치하여 왕의 자리를 나타내며, 왕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의궤와 근대 사진으로 파악한 덕수궁 중화전 오봉병은 1905년에 전수묵, 윤석영이 그린 회화이다. 덕수궁 중화전과 경복궁 근정전 오봉병에는 일월경을 걸었던 모습도 확인되는데, 중화전의 오봉병의 일월경은 제작에 필요한 재료와 수량도 알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
궁궐 정전의 오봉병은 당가를 두고, 부벽화와 장지의 형태로 한 면만 설치되어 있으며, 혼전인 경효전과 홍릉, 유릉의 침전 내부에는 당가를 설치한 후에 삼면으로 설치하였다. 진전에서 오봉병은 창덕궁 신선원전처럼 열성어진을 봉안하는 경우 삼면으로 설치하였고, 단독 어진을 봉안하는 전주 경기전은 오봉병을 병풍 형태로 제작하여 한 면만 설치하였다. 조선 왕실에서 제작한 동관왕묘 오봉병은 7폭 병풍으로 병풍을 세우지 않고 펼쳐서 고정하였는데 감실 형태로 구성하는 경우에는 병풍을 펼쳐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봉병의 장황은 궁중 기록화와 근대 사진, 의궤 도설과 기록을 토대로 장황 비단을 추정할 수 있는데, 대체로 변아에 초록 비단을 두고 그 위에 금니로 마름모꼴이나 원형 꽃 문양을 그렸다. 오봉병의 뒷면은 청능화지로 배접하였다. 현존하는 오봉병의 장황은 동관왕묘와 창덕궁 신선원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정도가 원형으로 여겨진다.
중화전 당가에 설치된 오봉병은 광복 전후의 시기까지도 일월경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대한제국 정권에 대한 불신과 일제 강점기 덕수궁의 장악에 대한 반감으로 인하여 일월경이 20세기 후반에 훼철되었다. 정전에서 오봉병은 왕과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며 높은 어탑 위에 조성하였고, 한 면에만 오봉병을 설치하여 왕의 위치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도록 하였다. 한편 삼면으로 오봉병을 두는 경우에는 장지형태로 배치하였으며, 감실로의 기능이 강조되는 경우가 다수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독특한 왕의 상징인 오봉병은 정전에서 대형의 부벽화로 제작하여 왕의 배경이 되었고, 장지와 병풍 등으로 제작하여 신주, 어진, 재궁 등을 봉안하는데 활용되기도 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당가의 구조와 오봉병의 설치
Ⅲ. 의궤에 기록된 중화전 오봉병의 화원과 재료
Ⅳ. 근대 사진으로 파악한 중화전 오봉병의 변천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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