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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무용역사기록학회 무용역사기록학 무용역사기록학 제55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45 - 27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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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후기 궁중 연회에서 연행된 <처용무(處容舞)>의 춤과 반주음악의 변화 양상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수행되었다. 연구 방법은 조선후기 연회와 관련한 문헌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살펴서<처용무>의 변화 양상과 원인을 찾아 제시하는 것이다. 2013년에 발표된 김은자의 「철종대 처용무 연구」를 기초한 후속연구를 진행하였다. 조선후기 연회용 <처용무>의 변화는 조선전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였는데, 가장 큰 변화는 음악에서 비롯되었고, 음악과 더불어 <처용무>의 춤 내용과 구성에도 괄목할만한 변화가 발생했다. 『악학궤범홀기』 <처용무> 반주음악은 춤 도입에 <여민락>, 춤 전개에 <영산회상=향당교주> 만․중․급기, <정읍급기>와 그 창가, 그리고 <북전급기>와 그 창가가 연행되었다. 마지막 퇴장에는 <영산회상> 반주의 본사찬, 미타찬 창가가 연주되었다. 『악학궤범』과 『악학궤범홀기』 <처용무>의 음악을 비교하여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후대에 <여민락>이 도입음악으로 추가되었고, <봉황음>은 <영산회상> 조곡 중에서선택적으로 대체되었으며, <삼진작>이 누락되었다. <처용가>도 노래불리지 않게 되었다. 철종조 <처용무>에서는 춤 전개에 <향당교주>보다는 <여민락령>이 주로 연주된 점이 특징이자 큰변화이다. 또 향악의 창가인 <정읍 급기>와 <북전 급기> 대신에 당악정재의 창사 <미후사>가 노래된점도 큰 변화이다. 한편, 『악학궤범홀기』와 정사년 『무도홀기』 춤 부분의 변화를 비교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은자의 연구 결과처럼 회무 → 일렬제행 → 오방 → 일렬제행 → 회무로 진행되는 큰 틀은 유사하지만, 춤의 내용과 형태는 크게 변화하였다. 둘째, 정사년 『무도홀기』는 도입 부분의 설명이 가장 자세하다. 반면 춤전개 부분은 오히려 생략된 춤이 많다. 셋째, 『악학궤범홀기』에는 <정읍급기>, <북전급기>와퇴장할 때의 <영산회상>에 각각의 고유한 창사가 있었다. 그러나 정사년 『무도홀기』에는 <미후사>가이들 가곡(歌曲) 부분을 대신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사년 진찬의가 특히 대왕대비의 생신과 왕대비의오순경축 행사였던 만큼,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보허자령>의 <미후사> 노래가 여기들에 의해 창해졌을것으로 보았다. 넷째, 『악학궤범홀기』에는 중요 춤 부분인 오방작대를 행할 때 <영산회상>이 주요 악곡이었다. 그런데 정사년 『무도홀기』에서는 <여민락령>이 <처용무>의 중요 반주곡으로 사용되었다. 음악의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연구 결과 <처용무>의 조선말기 70여 년간의 기록부재를 이유로 계승의 단절을 주장했던 선행연구는 오류였음을 밝혔다. 또 조선후기 『의궤(儀軌)』나 『홀기(笏記)』의 정재반주음악으로 많은 비중을 갖는 <향당교주(鄕唐交奏)>는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임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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