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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28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07 - 756 (5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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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는 10세기대에 들어와 혼란한 정국이 지속되었는데, 한반도는 고려가 명실상부한 통일왕조를 건국하고, 중국 대륙의 북방지역은 거란족이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였으며, 중원 지역은 오대십국 이후 북송이 건국되면서 서서히 안정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국 대륙은 여전히 요와 북송의 팽팽한 긴장관계가 지속되었다. 그에 따라 고려는 여러 측면들을 고려하여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체적으로 연호를 제정하여 사용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중국 연호를 차용하였다. 특히 고려는 10-12세기대 중국에서 여러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복잡한 정세 속에서 정치적인 역학 관계에 따라 특정 국가의 연호를 차용하였다. 이중에서 요나라 연호가 고려의 비문과 묘지명, 전적과 기문, 탑상과 석조, 각종 공예품과 와편 등 다양한 문물에서 확인되고 있다. 요나라 연호가 새겨진 문물은 고려와 요의 외교관계 뿐만 아니라 편년과 고려 사회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기초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고려는 993년 10월 요나라의 1차 침공 이후 994년 2월부터 요나라 연호를 시행하며, 공식적인 외교관계에 따라 차용하거나 불용한다. 그런데 11세기 후반 경부터 요나라의 국력이 약화되자 고려는 간헐적으로 송의 연호를 차용하기도 하며, 1115년 금이 건국되자 1116년 4월 요나라 연호의 차용을 중지한다. 이후 고려에서 요나라 연호의 시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려시대 문물에 새겨진 연호는 그것이 기록된 사실이 있었던 시기에 정부 차원의 연호 시행이 기준이 되었으며, 기년을 표기한 방식도 일반적인 원칙은 있었지만 찬자나 서자 등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활용되었다. 고려의 연호 시행은 기년을 파악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당대의 정치적인 역학관계에 따라 실리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가 서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당시 중국을 중심한 범 동아시아권에 대한 인식과 가치 공유 등이 고려되었다. 또한 고려가 일률적이고 동시적으로 연호를 시행한 것으로 보아 국가 운영과 관련된 체계화된 행정 시스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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