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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6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3 - 57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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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을 사상적 토대로 삼은 사림파의 학문적 계보와 연대는 조선왕조의 건국과 함께 역사적 행보를 시작한다. 鄭夢周, 吉再로부터 江湖 金叔滋와 그 아들 佔畢齋 金宗直으로 이어지는 조선 유학사와 정치사의 서막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후 星湖 李瀷은 退溪와 함께 단연 南冥 曺植을 영남지역의 학자로 지목하며 문명의 극치를 이룬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두 학자의 활동 지역에 따라 上道의 퇴계와 下道의 남명은 각각 ‘仁’과 ‘義’를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이 드러난다. 퇴계가 학적 자세로서의 仁을 구현한 예악의 완성에 집중하였다면, 남명은 ‘敬以直內 義以方外’로 대표되는 克己復禮를 통한 ‘內聖外王’의 목표에 집중한 실천적 측면이 강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남명의 강한 실천성은 후학들의 전범이 되었다. 來庵 鄭仁弘이 이룩한 학파의 흥성했던 시기는 물론이거니와 戊申亂(1728)을 거쳐 정조의 賜祭文(1796)이 내리기 이전까지의 침체기에도 학맥을 유지하던 원동력이 되었다. 본고는 18세기 남명학파의 인물로 이해되는 丹溪 지역 안동 권씨 가문의 梧潭 權必稱의 학파적 연원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의 집안은 15세기 중반 丹城縣에 혼인 관계로 정착한 이후 權潗·權濬 형제와 권필칭의 5세조 權濤가 문과에 합격해 ‘三權’으로 불리면서 지역적 기반을 확고하게 잡았다. 그런데 18세기 무렵부터 단계 지역 안동 권씨 가문은 문과가 아닌 무과급제자를 배출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특색을 지닌다. 그리고 권필칭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렇지만 그는 34세 때 櫟泉 宋明欽을 방문하였으며, 52세 때 渼湖 金元行을 찾아가 문인록에도 올랐을 정도로 학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권필칭은 51세 때 고향인 三嘉에 梧潭精舍를 마련해 독서와 講學의 터전을 삼아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특히 자신이 관직 생활을 하던 지역에서 유생들을 교육하고 백일장 등을 시행해 유학의 권면에 힘썼다. 그리고 그는 『소학』, 『주역』, 『성리대전』, 『중용』을 탐독하며 ‘誠’과 ‘敬’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실천 자세를 중시하는 修身의 생활 태도를 강조하였다. 이는 그의 만년 저작인 「隨思輒錄」에 집중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를 통해 남명 조식의 심적 수양과 실천적 면모의 학문적 흔적이 18세기 단계 지역 안동 권씨 가문에 잔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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