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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53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39 - 16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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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평양 3·1운동의 역사적 원류를 추적한 것이다. 조선시대 서북은 중앙 정부로부터 ‘배제와 소외’의 지역일 뿐이었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었던 서북은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해 경제적으로 삼남지역을 능가하고 있었다. 또 자작농이 발달했다. 양반 세력이 약했던 사회적 조건 역시 서북의 ‘양민’이 근대적으로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 서북인이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수용하는 것은 청일전쟁 후였다. 청일전쟁의 와중에서 평양 주민들에게 교회는 ‘민중의 피난처’로 부상했다. 청에 압박에서 벗어난 서북인들은 교회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으로 바뀌어 나갔다. 1898년 독립협회의 평양지회 설립은 평양의 근대적 역량을 변모케 하는 원동력이었다. 평양지회는 전국 지회 중에서 규모도 가장 컸고 힘도 강력했다. 독립협회 평양지회가 활발해지면서 이들의 정치의식과 사회참여도 눈에 띄게 신장되어 갔다. 천도교는 평양 3·1운동의 기획과 대중화 단계에서 기독교와 더불어 한 축을 담당했다. 동학은 1896년 이후 교단의 중심지를 서북으로 이동하면서 조직 기반을 강화해 갔다. 동학은 1904년 민회운동을 벌이며 서북인들의 정서에 더욱 접근해 갔다. 1905년 12월 천도교로 개칭한 뒤 서북에는 평남에 6개의 대교구, 평북에 8개의 대교구가 설치되면서 세력이 더욱 확장됐다. 이로서 서북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라 문명화를 이끌어낼 혁명적 장소이자 정신적 중심지로 부상했다. 평양에서 설립한 대성학교는 서북의 근대 교육과 계몽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대성학교는 설립 초기부터 서북인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1910년대 평양에서는 1913년 송죽형제회, 1914년 기성볼단, 1917년 조선국민회 등 비밀단체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 단체들은 계몽운동을 통해 양성된 주체라는 점에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1910년대 서북의 독립운동은 계몽운동을 계승하면서 발전하고 있었다. 이처럼 서북의 민족역량은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대하를 이루듯이 1919년 3·1운동으로 모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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