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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 자료유형
- 학술저널
- 저자정보
- 발행연도
- 2020.10
- 수록면
- 237 - 269 (33page)
이용수
초록· 키워드
본고에서는 식민지기 기혼 여성들을 향한 일종의 사회적 폭력이었던 ‘소박’으로 인해 자살을 감행했던 ‘소박녀’들의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식민지기 가부장제의 모순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언급한 ‘소박녀’라 명명된 여성들은 소위 ‘구여성’이라 일컬어지는 집단체의 일부였다. ‘구여성’이란 관습적 삶을 유지해온 여성들로서 근대 이전부터 늘 존재해왔던 집단을 일컫는 비유적인 말이었다. 전통적인 시집살이를 하는 도시 여성과 대부분의 농촌 여성을 포괄하는 구여성은 일제시대 여성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도시화가 꾸준히 진행된다고는 하나 인구의 80-90% 가량이 농촌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조선 여성의 대부분은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구여성은 자립적인 존재일 수 없었다. 신여성이 등장함에 따라 신여성의 대립항으로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기에, 신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변화함에 따라 구여성에 대한 시각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했다. 구여성은 신여성의 타자화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여성을 전통적인 정숙함과 순종의 미덕을 갖추었다고 부각시킴으로써 신여성을 비난하는 기제로 활용되기도 한 동시에 근대적 지식이 부족한 무지한 이들로 치부하여 힐난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당시 구여성은 여성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여성을 둘러싼 담론에 밀려 사회적으로 그 존재성이 매우 희미했고 관심의 음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열악한 현실 조건 속에서도 정태적이거나 획일적인 삶에 안주하지 않았고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려고 노력해 온 삶의 여정을 보여왔다. 같은 듯하지만 다른 두 여성들의 삶은 곳곳에서 만나고 또 갈라서기를 하면서 여성성의 스펙트럼을 넓혀주었다. 1920년대에서 30년대로의 시기는 기혼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혼돈을 느꼈던 때이다. 현모양처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것만이 자신의 살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기혼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인식된 여성적 매력이란 신여성들에게 보여졌던 퇴폐적, 부정적 여성성이었다. 기혼 여성들이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벽에 부딪히면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지게 된다. ‘소박’을 당한 이들의 행보에 대해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살이라는 죽음으로서 자신의 의지를 소극적으로나마 표명하는 것이었다. 기혼 여성들의 자살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강박증을 동반한 자살행위와 광기어린 복수의 의지를 담은 자살행위가 그것이다. 그녀들의 자살은 순응적 자살이 아니었다. 내적 의지를 표명하는, 이기적 자살이자 복수의 의미로서의 자살이었다. 한편, 이혼소송, 내소박, 출분 등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성들을 향한 적극적 응징 혹은 대응의 양상도 발견할 수 있었다.
기혼 여성들의 자살을 비롯하여 소송 행위 등은 가부장적 세계 질서에 교란을 유발하는 행위였다. 이전까지 침묵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제자리에 있기를 거부했고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기존 권위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대면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삶의 고통조차도 책임지는 성찰적 자아로 거듭나게 된다. 이들은 가정이라는 자신의 온전한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했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한 실행력을 보여준, 삶의 능동성을 지닌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구여성은 자립적인 존재일 수 없었다. 신여성이 등장함에 따라 신여성의 대립항으로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기에, 신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변화함에 따라 구여성에 대한 시각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했다. 구여성은 신여성의 타자화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여성을 전통적인 정숙함과 순종의 미덕을 갖추었다고 부각시킴으로써 신여성을 비난하는 기제로 활용되기도 한 동시에 근대적 지식이 부족한 무지한 이들로 치부하여 힐난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당시 구여성은 여성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여성을 둘러싼 담론에 밀려 사회적으로 그 존재성이 매우 희미했고 관심의 음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열악한 현실 조건 속에서도 정태적이거나 획일적인 삶에 안주하지 않았고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려고 노력해 온 삶의 여정을 보여왔다. 같은 듯하지만 다른 두 여성들의 삶은 곳곳에서 만나고 또 갈라서기를 하면서 여성성의 스펙트럼을 넓혀주었다. 1920년대에서 30년대로의 시기는 기혼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혼돈을 느꼈던 때이다. 현모양처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것만이 자신의 살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기혼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인식된 여성적 매력이란 신여성들에게 보여졌던 퇴폐적, 부정적 여성성이었다. 기혼 여성들이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벽에 부딪히면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지게 된다. ‘소박’을 당한 이들의 행보에 대해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살이라는 죽음으로서 자신의 의지를 소극적으로나마 표명하는 것이었다. 기혼 여성들의 자살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강박증을 동반한 자살행위와 광기어린 복수의 의지를 담은 자살행위가 그것이다. 그녀들의 자살은 순응적 자살이 아니었다. 내적 의지를 표명하는, 이기적 자살이자 복수의 의미로서의 자살이었다. 한편, 이혼소송, 내소박, 출분 등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성들을 향한 적극적 응징 혹은 대응의 양상도 발견할 수 있었다.
기혼 여성들의 자살을 비롯하여 소송 행위 등은 가부장적 세계 질서에 교란을 유발하는 행위였다. 이전까지 침묵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제자리에 있기를 거부했고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기존 권위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대면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삶의 고통조차도 책임지는 성찰적 자아로 거듭나게 된다. 이들은 가정이라는 자신의 온전한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했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한 실행력을 보여준, 삶의 능동성을 지닌 여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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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1. 식민지기 기혼 여성들이 처한 곤경: ‘소박’과 ‘이혼’ 사이
- 2. ‘소박’에 대한 소극적 대응 방식
- 3. ‘소박’에 대한 적극적 대응 방식
- 4. 고통을 직시하거나 극복하는 삶 : 식민지기 ‘소박녀(疏薄女)’들의 존재 의미
- 참고문헌
- 〈국문초록〉
-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