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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수정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50호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235 - 26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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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복사비〉는 경문왕의 즉위 전 행적을 짧고 함축적인 표현으로 서술했지만, 이는 헌안왕대부터 이어져 온 그의 정치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숭복사비〉는 경문왕의 탄생과 화랑 활동, 왕족 신분으로서의 出仕 및 高官 역임, 태자 직무수행을 순서대로 나열하여, 전왕의 아들이 아니었던 그가 순차적으로 왕위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삼국유사』가 ‘혼인’으로 단순화시킨 응렴의 조건 혹은 자질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는 화랑으로서 무예와 풍류를 떨쳤고, 金貂의 직에서 ‘肅淸海俗’ 했으며, 이후 태자의 지위에서 仁과 道를 강조하며 짧게나마 대리청정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금초의 직에서 ‘숙청해속’ 했다는 표현은 응렴이 왕의 側臣으로서 侍中의 역할을 수행했던 사실과 당시 업적을 나타내는 듯한데, 이는 그의 정치 이력과 관련해 특히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다. 응렴은 헌안왕대 이와 같은 위치에서 유교 경전 및 시문 이해를 통한 중국 문화의 수입 뿐 아니라 신라의 고유 제도를 禮樂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의 그것에 따라 바꾸는 과정에까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와 관련해 헌안왕대 확인되는 近侍機構의 정비와 유교 정치 이념의 표방이 특히 주목될 수 있다. 〈숭복사비〉에서 경문왕의 즉위 전과 후에 대해 일관되게 ‘풍속을 교화했다’고 평가한 것은 헌안왕대부터 이미 드러났던 그의 유교적 소양 및 정책적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大崇福寺碑銘〉에 보이는 景文王의 즉위 전 행적
Ⅲ. 憲安王代 膺廉의 정치 활동과 ‘肅淸海俗’의 의미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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