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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宣醞은 국왕이 특별하게 위로 · 축하 · 예우의 뜻을 담아 술을 내려주는 일이나 술 자체를 의미하였다. 영조 12년(1736), 영조는 노소의 화합을 강조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여 선온을 내렸는데, 이는 영조 6년(1730)에 소론 이광좌와 노론 민진원을 불러들였던 일이나, 영조 9년(1733)에 십구하교를 내렸던 일과 마찬가지로 정치사적 중요성을 지니는 사건이었다. 특히 영조 12년의 기로신 선온은 의례적 절차를 기반으로 한 상징성까지 띠고 있었다는 점에서 영조의 적극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영조11년(1735) 원자 탄생을 계기로 신임옥사로 희생된 노론 사대신의 신원건의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노론 영수인 민진원의 아들 민형수와 소론 이태좌의 아들 이종성이 대립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단순히 두 사람의 대립이 아니라 노론과 소론의 충돌이었다. 뿐만 아니라 민형수 · 이종성이 노 · 소론의 대표격인 민진원과 이태좌의 자제라는 점을 미루어 본다면 향후 조정에서 세대를 이어 대립할 여지를 남길 수도 있었다. 점진적으로 탕평정국을 정립해가고자 했던 영조는 이들 사이에 남아있는 감정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영조 12년에 기로소 대신인 이태좌와 민진원을 불러 선온할 때 이종성과 민형수까지 동석시켜 노소의 화해를 주도했던 것이 그 일환이었다. 이는 신임옥사에 대한 노론의 신원요청을 점진적으로 수용함에 있어 소론과의 화합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여 정국 균형이 무너지는 일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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