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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한국학 2021 봄호 제44권 제1호 (통권 제1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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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사비시대 대좌평의 지위를 독점한 씨족은 사택씨였다. 성왕대 조정회의(朝廷會議) 의장인 상좌평 사택기루(沙宅己婁)는 대외정책을 주도하였다. 그후 사택씨는 위덕왕대에 왕실의 외척으로 등장한다. 무왕 즉위 후에 사택덕적(沙宅德積)의 딸은 왕후로 승격되었고 왕실 외척으로서 귀족들을 통솔하는 대좌평의 지위는 확고해졌다. 의자왕대 왕흥사(王興寺)의 창건과 대좌평 사택지적(沙宅智積)의 장엄한 사찰은 사택씨 권세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왕실이 해체되기까지 의자왕 측근에서 보위했던 인물은 대좌평(大佐平) 사택천복(沙宅千福)이었다. 주류성 함락 직후 일본으로 망명한 좌평 사택소명(沙宅紹明)은 법관대보로서 등용되었다. 그의 후예 중에는 주금박사(鑄金博士)로서 활동한 사택만수(沙宅萬首)와 내시사의 여관(女官)으로 종5위하에 서임된 사택만복(沙宅萬福)이 있다. 사택소명과 함께 망명한 사문영(沙門詠)의 후예들은 대학두 등 고위관리로서 활동하였다. 사택씨는 권력에 밀착된 외척의 신분을 넘어 백제왕권의 안정성을 유지해 나가는데 기여하였고, 백제멸망 후에는 일본조정에서 가문을 계승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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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21-151-00157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