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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저널정보
국립광주박물관 아시아 도자문화 연구 아시아 陶磁文化 硏究 제3호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243 - 257 (1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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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방시회축(淸凉山房詩會軸)」은 1831년 정월 20일, 다음날인 21일에 열린 청량산방시회에 참석한 6~7명의 사대부들이 지은 시를 기록한 시축이다. 당시 해거는 초의를 위해 시회를 열었고, 이 시회에는 유산, 동번, 경당, 저원과 약산 부자 등이 참석했다. 대부분 해거와 교유했던 인사들이 모인 시회라는 특징을 보인다. 이 시축은 한지 두루마리 형태로 구성되었고, 크기는 가로 731.5cm, 세로 27.5cm의 장축이다. 시축을 기록한 사람은 유산 정학연과 초의로 짐작되지만, 정월 21일의 시회에는 시를 지은 사람이 글씨도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시회는 초의가 경화사족들과 교유를 확대하기 시작할 무렵에 열린 시회였는데, 초의는 이 시회를 통해 경향에 자신의 필명을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또한 해거는 초의를 통해 차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는 1837년 해거가 초의에게 다도를 하문하였기 때문에 초의가 「동다송」을 저술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해거는 차의 이로움을 더욱 깊이 천착했던 것이니 해거의 차에 대한 인식은 초의에게 영향받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청량산방시회축」은 초의와 경화사족의 교유 확대 초기의 상황을 밝힐 수 있는 자료로서 초의와 경화사족의 유불 교유사 연구에 꼭 필요한 자료이다. 아울러 조선 후기 초의가 차 문화를 중흥할 토대인 음다층의 확산도 이 시회를 통해 인적(人的) 네트웍크(network)를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청량산방시회축」의 자료적 가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청량산방시회축」의 구성과 체재
Ⅲ. 경화사족과 초의선사의 유불 교유
Ⅳ. 나가며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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