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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동래기영계의 활동을 상징적인 예로 들어 개항기 이래 식민지기에 이루어진 한국인 민간단체 활동의 특성을 구명하려는 시도다.
개항기 이래 일제를 등에 업고 동래에 안착한 일본인 민간단체는 식민제국의 침탈에 동조하여 식민정책 입안과 집행 과정에서 조력자, 혹은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했다. 그러면서 일본인 민간단체는 일제 식민당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지배에 나서는 한편으로 피식민지인과의 융화를 도모하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런 일본인 민간단체로부터 자극과 더불어 영향을 받은 동래의 한국인들도 민간단체를 새롭게 결성하거나 재건했는데 그 중에서도 1876년에 기존의 기영계를 중흥한 동래유지들 모임 동래기영회가 대표적이다.
동래기영회는 그런 식민지배자들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전용(專用)하는 전략으로 식민 지배를 수용하면서도 독립의 의지를 다지며 지방권력을 장악하고 근대문물을 수용하면서도 저항의식을 고취하는 근대교육 실시에 나섰다. 이러한 동래기영회 활동을 분석하고 해석하기 위해 여기서는 문화적 혼종에 관한 호미 바바의 ‘양가성 원리’를 원용하여 그 특성을 살펴보았다.
우선 동래기영회는 도시계획과 산업, 교육 등 광범위한 지역현안에 간여하고자 동래부국채보상일심회 발기에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시구개정선 변경 반대, 시장 이전과 공설화, 온천탕 읍영화 등에 대한 적극적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1920년대에는 일제에 협력한다는 비판을 무릅써가며 면협(面協), 읍회(邑會) 선거에 출마하여 지방권력을 장악하는 한편으로 독립의 의지를 다졌다. 나아가 근대교육을 수용하고 실시하여 교육계몽으로 국권회복을 도모하고자 1898년 동래부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개양학교, 삼락학교, 동명학교를 거쳐 사립동래고등학교 등을 설립했다. 특히 근대교육 실시과정에서는 일본어 교육을 비롯하여 근대문물을 수용하고 이해하기 위한 교과목과 더불어 식민당국의 지침을 무시한 한국사와 한국지리를 가르쳐 학생들에게 저항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 그 결과 동명학교를 비롯하여 동래사립고보 등에서 교육당국의 지침에 대항하여 동맹휴교를 주도하거나 1919년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이처럼 동래기영회가 지방권력 장악과 근대교육 실시로 추구한 바는 일제 식민당국이 식민지 지배를 위해 앞세운 ‘우월/미개’라는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전제를 거부하는 한편 ‘내치동화(內治同和)’와 ‘일선동화(日鮮融和)’,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권위적이고 단선적인 요구를 물리치고 무력화시키는 저항적 혼종의 방식이었다고 본다.
개항기 이래 일제를 등에 업고 동래에 안착한 일본인 민간단체는 식민제국의 침탈에 동조하여 식민정책 입안과 집행 과정에서 조력자, 혹은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했다. 그러면서 일본인 민간단체는 일제 식민당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지배에 나서는 한편으로 피식민지인과의 융화를 도모하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런 일본인 민간단체로부터 자극과 더불어 영향을 받은 동래의 한국인들도 민간단체를 새롭게 결성하거나 재건했는데 그 중에서도 1876년에 기존의 기영계를 중흥한 동래유지들 모임 동래기영회가 대표적이다.
동래기영회는 그런 식민지배자들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전용(專用)하는 전략으로 식민 지배를 수용하면서도 독립의 의지를 다지며 지방권력을 장악하고 근대문물을 수용하면서도 저항의식을 고취하는 근대교육 실시에 나섰다. 이러한 동래기영회 활동을 분석하고 해석하기 위해 여기서는 문화적 혼종에 관한 호미 바바의 ‘양가성 원리’를 원용하여 그 특성을 살펴보았다.
우선 동래기영회는 도시계획과 산업, 교육 등 광범위한 지역현안에 간여하고자 동래부국채보상일심회 발기에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시구개정선 변경 반대, 시장 이전과 공설화, 온천탕 읍영화 등에 대한 적극적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1920년대에는 일제에 협력한다는 비판을 무릅써가며 면협(面協), 읍회(邑會) 선거에 출마하여 지방권력을 장악하는 한편으로 독립의 의지를 다졌다. 나아가 근대교육을 수용하고 실시하여 교육계몽으로 국권회복을 도모하고자 1898년 동래부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개양학교, 삼락학교, 동명학교를 거쳐 사립동래고등학교 등을 설립했다. 특히 근대교육 실시과정에서는 일본어 교육을 비롯하여 근대문물을 수용하고 이해하기 위한 교과목과 더불어 식민당국의 지침을 무시한 한국사와 한국지리를 가르쳐 학생들에게 저항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 그 결과 동명학교를 비롯하여 동래사립고보 등에서 교육당국의 지침에 대항하여 동맹휴교를 주도하거나 1919년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이처럼 동래기영회가 지방권력 장악과 근대교육 실시로 추구한 바는 일제 식민당국이 식민지 지배를 위해 앞세운 ‘우월/미개’라는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전제를 거부하는 한편 ‘내치동화(內治同和)’와 ‘일선동화(日鮮融和)’,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권위적이고 단선적인 요구를 물리치고 무력화시키는 저항적 혼종의 방식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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