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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배봉기의 사례를 통해 포스트식민 냉전 체제(Postcolonial Cold War regime)가 일본군 ‘위안부’의 삶과 죽음을 주조한 주요한 힘(dynamics)임을 드러내고, 이 체제 하에서 ‘위안부’의 목소리가 침묵 된 메커니즘을 규명하고자 했다. 배봉기는 1914년 충청남도 신례원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둘째 딸로 태어나 1944년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에 ‘위안부’로 가게 되었고, 1991년 오키나와에서 생을 마쳤다. 그녀는 일본제국 ‘신민’으로 오키나와에 갔지만, 미군 통치하에서는 ‘무국적자’로, 1972년 오키나와 일본 반환 이후에는 ‘불법체류자’로 범주화되었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발화할 수 없었다. 1975년 재류특별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공공의 장에서 ‘위안부’임을 밝힌 최초의 증언자가 된 배봉기는 이후 조총련 관계자들과 깊은 교분을 맺었다. 당시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하위 파트너였던 박정희 정권하에서 그녀의 발화에 응답할 청중이 형성되기는 어려웠다. 1991년 사망 후 오키나와 민단과 조총련은 유골을 두고 소유권 분쟁을 벌였는데, 두 집단은 그녀를 대변하기 위해 삶과 경험을 동질적인 것으로 재현했고 이는 또 다시 배봉기의 발화를 침묵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또한 탈냉전, 민주화, 여성운동과 여성학의 영향으로 1991년의 남한에서는 1975년과 다르게 ‘위안부’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청중이 생겨나고 있었지만, 그 관심은 귀환하지 않은 ‘위안부’에게까지 미치지 못했다. 이들의 발화를 제대로 듣고 재현하는 것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포스트식민 냉전 체제 탈구축과 직결되는 긴요한 과제이다.
본문·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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