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혜진 (조선대학교)
저널정보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역사연구 제42호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379 - 418 (40page)
DOI
10.31552/jh.2021.09.42.379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한국전쟁 시기 국가의 남한지역 전통음악계 동원을 검토하였다. 전통음악계는 대한민국 수립 직후부터 국가에 동원되기 시작하였다. 전통음악인과 그들의 음악은 3·1절과 광복절 기념식, 개천절 경축식 등 각종 국가 행사뿐만 아니라 ‘우방과의 친선을 도모’하는 국가적 사업, 그리고 대중 선전과 선동작업에도 동원되었다.
한국전쟁 시기 남한지역의 전통음악계는 전황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에 의해 각각 동원되었다. 전쟁 직후 인민군의 남한지역 점령 시기에 전통음악인들은 인민공화국 지지 시위와 인민군 대상의 위문공연, 또 인민공화국을 위한 선전·선동 작업, 나아가 대중위문 사업에도 동원되었다.
전통음악계의 본격적 동원은 대한민국에 의해 이루어졌다. 국군의 반격과 서울 수복(1950.9.28) 이후 아악부와 국악원 소속 전통음악인들은 부역 심사 후 ‘국민방위군 정훈공작대’와 ‘육군 군예대’ 등에 편성되었다. 그들은 각각 전방과 후방 지역에 동원되어 위문공연뿐만 아니라 반공 선전·선동 활동을 수행하였다. 1951년과 그 다음다음 해까지 전쟁이 지속하면서, 전통음악인들은 집단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대한민국의 전쟁 선전·선동, 장병 위문뿐만 아니라 국가의 ‘민심 수습’ 등의 작업에 동원되었다. 이처럼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은 자신들의 전시 목표에 따라 전통음악인과 ‘전통음악’을 동원하였다.
그런데 전통음악의 동원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주로 성악이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기동성과 편의성이 요구되고 추구되는 전시 상황에서, 성악은 간편하게 국가의 정치적 의제를 언어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성악은 ‘민족애와 조국애, 그리고 민족과 조국에 대한 의무감’ 등을 대중들의 의식에 불어넣고 그들을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국민으로 변화시키는 장치로 동원되었다.
그렇지만 성악 동원 역시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은 ‘민요가 너무 구슬퍼서, 군인들의 감정 절제가 어려웠기’ 때문에, 그것은 대적(對敵) 심리전 장치로 동원되거나 후방의 시민 위안 공연에 동원되었다. 전통음악의 선택적 동원은 전통음악 자체에 내재한 특성만이 아니라 세계사적 맥락에서 대한민국의 한국전쟁이 가진 성격과 전쟁 전개 양상의 특성 등에 의해 규정된 것이기도 했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한국전쟁 이전 대한민국의 전통음악계 동원
Ⅱ. 인민군 점령기의 전통음악계 동원
Ⅲ. 서울 탈환 후 대한민국의 전통음악계 동원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14)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