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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경희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미술사 제5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9 - 8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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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천사에는 西方 極樂世界에서 說法하고 있는 阿彌陀佛과 부처를 중심으로 모인 권속들을 그린 <阿彌陀佛會圖>가 두 점이 극락보전과 대방에 각각 봉안되어 있다. 한 점은 사찰의 主佛殿인 극락보전에 後佛圖로, 나머지 한 점은 大房에 조성되어 있다. 주불전은 사찰의 교리와 정체성을 대표하는 곳이자 가람배치나 신앙적인 면에서 중요한 불전이고, 대방은 왕실의 願堂이라면 필수적으로 건립되는 전각으로 규모면이나 의미면에서 역시 주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미타부처의 설법 모임’이라는 주제는 같지만 두 점의 불화는 봉안처, 조성연대, 제작화승과 도상, 시주자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흥천사는 왕실의 원당인 사찰이었기 때문에 두 점의 불화 모두 왕실과 관련된 인물들에 의해 후원되었으나 봉안되는 시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불회도>는 흥천사가 창건과 비견되는 시기에 조성되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에 의해 대규모로 사찰이 중수된 시점에 경상북도 四佛山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운 자우를 수화승으로 하여 불화를 조성토록 하였다. 불화의 도상은 자우의 선구적인 아미타불회도를 계승하였다. 시주는 왕실의 명을 받들어 상궁들이 행하였는데 불화가 조성되기 1년 전에 명성왕후는 고대하던 첫째 아들을 얻었지만 4일 만에 죽음으로 떠나보냈다. 그러므로 이 불화의 조성을 비롯하여 당시 흥천사 불사에는 왕자탄생의 기원이 내포되어 있다. 대방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불회도>는 극락보전의 불화 보다 23년 뒤에 조성되었다. 이 때 흥천사에서는 ‘水月道場空花佛事’라는 불사의식과 관련하여 불화를 조성토록 했으며 인근 사찰인 봉국사의 대방의 불화와 같은 불사로 마련되었다. 이 불사는 흥천사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행해졌던 의식으로, 왕실의 원당에서 先王先后의 명복을 빌기 위한 성격으로 추정된다. 한편 불사를 후원했던 시주는 모두 상궁으로 확인되었다. 불화를 제작한 화승은 수화승 亘照를 비롯한 근기지역의 화승들이다. 대방의 <아미타불회도>는 倚坐像을 보이는 보살 등 근기지역에서 유행했던 아미타불회도의 도상이 공유된 것을 알 수 있다. 흥천사의 아미타불회도는 원당 흥천사의 기능과 신앙을 보여주는 당대의 산물로, 흥천사의 역사와 신앙, 불화의 도상과 후원자 등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주요한 불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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