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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순형 (창원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29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 - 3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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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은 불교의 토착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남북의 경계공간인 양양에서 활동이 그 토대가 되었다. 본문에서는 양양의 편리한 교통망, 도안의 이주와 정착했던 이유, 양양에서 활동상을 살펴보았다. 2절에서는 양양지역에 구축된 교통망을 통해서 이곳이 지정학적 요충지임을 살펴보았다. 남북의 장기 대립 속에서도 이곳에서는 군사 원정, 상업 교역, 유민 이동 등이 많이 이루어졌다. 양양의 서북쪽 ‘商山-武關道’는 최단거리로 관중에 통했고, 북쪽에는 ‘남양애도’가 있어 낙양ㆍ업성으로 통했다. 남쪽에는 江ㆍ漢평원을 가로질러 수륙교통이 발달하였고, 서쪽에는 면수를 거슬러 관중ㆍ한중과 통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동진의 庾翼은 반드시 점령해야할 전초기지라 하였고, 청대 顧祖禹는 ‘천하의 척추’라고 비유하였다. 3절에서는 도안 이전의 양양에서 불교, 도안승단의 양양 이주와 정착 원인을 살펴보았다. 후한의 安世高, 서진의 訶羅竭, 천축의 耆域, 竺法慧 등의 활동과 백마사의 존재가 도안 이전의 양양지역 불교상을 반영하였다. 도안은 佛圖澄의 입적 이전에 하북 각지를 유행하다가, 이곳의 혼란으로 양양으로 남하하였다. 그의 남하시기는 354년설과 365년설이 있었는데, 후자의 신빙성이 더욱 높았다. 그는 15년간 머물며 이곳을 4세기 후반 불교계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가 양양에 머물렀던 것은 漢地 불교계의 중심이 북방이었던 것, 양양의 편리한 교통망 구축, ‘한문’이란 개인의 신분적 한계와 晩渡라는 시간적 제약 등의 요인 때문이었다. 4절에서는 양양에서 활동을 불전의 연구ㆍ정리와 승단의 확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는 하북에서 禪經을 연구하여 注ㆍ序를 저술하고, 반야경을 연구ㆍ강론하며 두각을 드러내었다. 양양에서도 계속 『방광경』을 강설하였고, 도솔상생을 통한 미륵신앙도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양양에서 『綜理衆經目錄』의 근간도 완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양양에서 교세를 확장하고, 계율 정비를 통해 승단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이런 행위는 그의 만년까지도 지속됨으로써 수행 공동체의 청정성과 동질성을 유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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