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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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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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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글은 고려 무신집권기 국왕이 주재한 주요 의례를 왕권의 위상과 관련하여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왕실 조상에 대한 숭배 의례인 왕실제사와 국휼의례를 중심으로 정치의 두 구심, 즉 국왕과 무신집정의 시각에서 의례의 설행 의도 및 의례 개정과 참용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명종은 왕실 조상에 대한 숭배의례를 국왕의 위상을 확인하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 활용하였다. 재위 초반 명종은 경령전과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서, 자신이 태조의 후계 왕이며 왕정의 최고 책임자임을 과시하였다. 재위 후반 명종은 공예태후의 국휼을 주관하면서 신민과 구별되는 왕실의 존엄을 드러내고 왕권의 위상을 높이려 하였다. 최씨정권이 성립하면서 국왕의 권력은 미약해졌다. 왕권을 표상하는 왕실 조상 숭배의례를 주관하는 일은 국왕의 권리였지만 최충헌은 국휼의 상기를 단축하고 예식을 격하시켰다. 최씨집정은 국왕의 폐위와 옹립을 좌우하며 태묘에 봉안할 신주를 정하고 소목의 위차를 개정하였다. 왕통을 상징하는 의례를 개정함으로써 국왕의 실질적 권위가 향상되는 것을 제어하였다. 최우가 집권자가 되면서 최씨집정 집안의 상장례에 국휼의 왕례와 왕후례를 참용하였다. 이에 따라 왕실의례가 가지는 특수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최항집정기에 고종은 최씨집정이 권력을 승계한 것을 기념하며 왕실 조상에게 시호를 가상하였다. 최씨정권 아래서 왕들은 의례를 주재하는 권한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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