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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함충범 (한국영상대학교)
저널정보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현대영화연구 현대영화연구 제17권 제2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75 - 20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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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은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1950년대를 거치면서 여러 장르를 접하고 나름의 스타일을 구사하며 다채로운 영상 기술을 습득하는 한편,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화적 표현 기법을 발전시켜 갔다. 그 결과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 <성춘향>(1961)이 흥행에 크게 성공함으로써 ‘기술 헤게모니(Technology Hegemony)’를 선점하게 되었다. 이후 신상옥은 ‘신필름’의 외형을 거대하게 키우는 동시에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내놓으며 독자적인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빨간 마후라>(1964),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 등의 ‘대작’들을 연출, 제작함으로써 영상 스펙터클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중후반 이래 신필름의 제반 상황은 악화일로에 빠졌고, 신상옥은 기술적 시도에 있어서도 이전의 것들을 반복하며 다소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대를 앞선 채 동시녹음을 시도한 <대원군>(1968)을 만드는 등 기술적 지평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이어 갔다. 신상옥은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된 뒤 1980년대 중반 북한에서 ‘신필름 체제’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북한 최초의 SF 괴수영화 <불가사리>(1985) 등을 통해 기술적 시도와 제작 선점화의 양상이 재연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양상들을 살피건대, ‘신상옥 영화’의 기반과 동력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테크놀로지’였음이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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