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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정인보(鄭寅普, 1893~1950, 납북)는 20세기 초반 동아시아 신유학(新儒學)의 한 축을 이루는 양명학의 역사에 관해 『양명학연론』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저술하였다. 그것은 ‘한국 최초의 양명학사’이자 일본 양명학에 대한 서술이 빠져있기는 하지만, 동아시아 양명학사였다. 더 엄밀히 말하면 ‘한중(韓中) 양명학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중국 양명학과 조선 양명학(하곡학파)에 대한 연구의 특징은 종국에 가서 국학에 대한 연구처럼 자신의 민족주의적 국학관(觀) 및 이분법적 역사관 안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논고는 본문의 첫째 장에서 이와 같은 『연론』의 이분법적 역사관과 학문관을 다루고 저작의 구성방식까지 우선적으로 검토하였다. 특히 『연론』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저작의 동기이자 이유 등을 제시한 「1 논술(論述)의 연기(緣起)」와 맺음말에 해당하는 「후기(後記)」의 담론을 주요한 근거자료로 하여 정인보의 역사관과 학문관이 어떠한 양상이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어서 『연론』의 구성방식은 물론이고 집필정신 및 그 사상사적 의의 등에 관해서도 검토하였다. 본문의 둘째 장에서는 『연론』을 ‘한중(韓中) 양명학사’로 규정하고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 및 중국 양명학파의 계보에 관하여 어떻게 재구성했는지를 고찰하였다. 또 이 뒤를 이어서 『연론』의 가장 주목받는 내용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양명학파 계보의 새로운 구축 등에 관해서도 검토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이 논고에서는 『연론』 다시 읽기 및 재조명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연론』은 넓은 의미로 근대 동아시아 양명학사, 좁은 의미로는 한중 양명학사라는 의미와 근대적 학술이라는 의의가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특히 정인보의 학파 분류법은 당시 중국과 일본의 학술 상황을 시야에 넣더라도 매우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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