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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본 연구에서는 실록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통해 15세기 승과(僧科), 즉 선시(選試)에 대한 규정을 시간 순으로 추출하고, 그에 따라 승과 선발의 규모 및 운영의 실제 양상을 구체적으로 추적하였다. 승과는 조선이 개창된 후에도 식년마다 꾸준히 치러졌으며, 개국초 제도를 일신하며 과거제(科擧制)와 유사하게 다듬어져 갔다. 승과 운영에 대한 규정은 조선 최초의 공식 법전인 『경제육전』부터 수록되었는데, 종(宗)별로 초선(抄選)과 입선(入選)의 2단계 시험을 보이며 최종 선발은 초선의 1/3만 뽑는다는 정수(定數) 규정이 그것이다. 이 틀은 『경국대전』에까지 원칙의 큰 변동 없이 유지되었으나, 그 사이 불교 종파 통폐합의 결과로 최종 합격자 수가 감소하는 것은 필연적 결과였다. 『경국대전』에는 승과 시험 과목이, 선종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과 『선문염송(禪門拈頌)』, 교종은 『화엄경(華嚴經)』과 『십지론(十地論)』으로 명시되어 있다. 법전에 수록된 이 과목들은 선종과 교학 이해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핵심 문헌들로, 불교계 내부의 수행 전통과 난이도를 충분히 고려한 위에서 지정된 것이다. 또한 이들 과목의 지정은 당시 불교계 내부의 변화를 반영하여 법으로 고정하려는 새로운 시도였다. 승과는 도승(度僧) 단계와 연결되어 최종 선발되는 승직자의 자질을 거듭 시험하여 걸러내는 방식으로 짜여 있었다. 즉, 승(僧)이라면 갖추어야 할 기본 자격을 점검하여 도첩을 발급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난이도 높은 과목으로 승과를 치렀으며, 시험 방식에 있어서도 도승은 송경(誦經), 승과는 강경(講經)으로 점차 어려워져, 최종 합격자는 불교적 소양을 십분 갖춘 엘리트 승이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건국 이래 연산군 10년까지 승과는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이 시기 조선에서는 고려 이래의 승과가 계속 치러지고 승직(僧職)이 제수되어 승정(僧政)의 요체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출가하여 선시를 보고 합격하는 것이 국가로부터 작질(爵秩)을 받는 하나의 수단이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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