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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현주 (상명대학교) 김영미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현대문학이론학회 현대문학이론연구 현대문학이론연구 제84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5 - 3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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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의 러시아 이주는 1863년 1월 소수의 조선인이 연해주 남(南)우수리스크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시작, 이후 기근과 봉건사회의 구조적 부조리에 지친 농민들의 이주가 급증한다. 이후 이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며 곳곳에 한인촌을 이루고 정착해나가는데, 1910년대 중반에는 그 수가 8만5천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국경지방의 한인 이주민을 경계하여 내륙지방 아무르강 중앙지역으로 분산 이주케 하고, 소비에트 정부는 연해주의 이주 한인촌을 집단농장 ‘콜호스’(kolkhoz)로 건설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연해주 지역 이주 한인에게 콜호스(집단농장)는 단순한 공동 노동의 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활, 교육, 문화, 여가 생활의 기반이고 경제 공동체였으며, 정치적으로는 한인 사회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려인 공동체인 콜호스는 소련의 동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다른 소수민족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성공적인 집단농장 체제를 구축하여 화려한 성과물을 거둘 수 있었다. 게다가 원래 농업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갖추었기 때문에 김만삼, 황만금 등의 노력 영웅들을 대거 배출하여 소비에트의 신화를 만들어내며 타민족의 모범 사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콜호스라는 집단농장 체제가 이주 한인(고려인)들이 이루어낸 성과 만큼 내부적으로 고려인들을 결속시키는 매개적 역할을 충분히 하였는지의 문제는 재고가 필요하다. 콜호스 체제는 고려인들 자신의 이해관계와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소비에트 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구축된 ‘강제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만, 고려인들이 연해주 시기나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이후에도 ‘강제된’ 집단농장 체제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분산 이주와 강제이주의 역사를 잊고 소련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현실 인식, 소수민족 차별이라는 불안감과 조바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글은 1860년대 처음 국경을 넘어 러시아 땅에 발을 디딘 한인들의 연해주 정착과정과 농업집단 체제에 대한 이주 한인들의 적응양상을 살펴보고, 이것이 그들의 이주 역사와 문화에 어떻게 기능하는지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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