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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경화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실학학회 한국실학연구 한국실학연구 제39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34 - 268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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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1720∼1799)은 정조의 국정에 조력하여 개혁 정치를 전개하였던 명재상이었다. 그가 역사에 남긴 자취는 정치뿐 아니라 미술과 같은 문화의 영역에서도 확인된다. 채제공은 9점에 이르는 다채로운 초상화의 주인공이다. 본 연구는 그간에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은 사실적인 표현 방법으로 주목받았던 이들 초상들을 주인공인 채제공을 중심으로 다시 조명하고자 한다. 채제공의 첫 번째 초상화는 1784년에 제작된 흑단령과 금관조복 차림의 초상이다. 서로 다른 관복을 착용한 두 초상은 관료 체계 내에서 정점에 위치한 채제공의 사회적 위상과 관료의식을 표현한 그림이었다. 화려한 관복에 보이는 과시적인 면모와 달리 당시 채제공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는 끊임없는 정치적 공세에도 불구하고 국왕의 전적인 신임과 비호를 받았으며 결국 국정을 이끄는 재상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1791년 정조는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65세 초상을 재상이 된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여 다시 그리도록 명령하였다. 흑단령 차림으로 제작된 72세 초상에 담긴 온화한 표정과 정면에 가까운 당당한 자세는 명재상 채제공의 권위를 시각이미지로서 구현하고 있다. 국왕의 명령에 따라 공적인 목적의 초상을 제작하는 한편에서 채제공은 비교적 사적인 성격이 강한 시복본 초상을 연이어 제작하였다. 시복본의 초상에서 그는 직접 찬문을 적고 기물을 곁들이는 등 한결 자유로운 표현을 시도하였다. 1792년에 완성된 73세의 시복 초상에는 국왕이 하사한 부채, 향합, 그리고 명소 주머니를 곁들였으며 자신이 지은 찬문에서는 이들이 모두 임금의 하사품임을 밝혔다. 각별한 의미를 지닌 기물을 자신의 초상에 그려 넣음으로써 채제공은 국왕과 자신의 사이에 존재하였던 정치적 신뢰와 인간적 친밀감을 그림에 담았다. 이러한 방식으로서 채제공이 자신의 초상에 구현되기를 바랐던 바는 ‘태평한 시대의 재상’의 진정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채제공의 다양한 초상화는 제작 당시 그의 정치적 처지를 반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예술적 수단으로 내면의 메시지를 표출하였다. 우리는 채제공을 통하여 초상화를 내면 표출의 매체로 활용하였던 조선의 초상화 문화의 심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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