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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지희 (한림대학교)
저널정보
대동한문학회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제60권 제6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 - 3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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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軒 李宜茂는 성종과 연산군 대에 활동했던 문신으로 시문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당대에 시문으로 상당한 명성이 있었고, 국가차원의 편찬사업에도 빠짐없이 참여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문집 『蓮軒雜稿』에는 총 372제 478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저작들을 바탕으로 이의무의 관료로서의 삶과 시인의 면모를 분석하였다. 李荇이 지은 <行狀>을 읽어보면 이의무의 삶은 戊午士禍를 제외하고는 큰 굴곡 없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관직을 역임하는 동안 순탄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남긴 <關西紀行錄> <關西紀行後錄> <湖南紀行錄>에 실린 시들을 보면, 그는 일생 동안 남들이 알지 못하는 수심과 번뇌로 괴로운 날들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남들보다 뛰어난 文才를 지녔으면서도 宦路에서 뜻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마음이 불평하였고, 그런 상태로 세월에 떠밀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한스러워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술을 마시고 시를 쓰며 근심을 풀고자 했다. 그는 즐거울 때도 시를 읊었고, 괴로울 때도 시를 읊었다. 시는 그와 늘 함께했으며, 그는 타고난 시인이었다. 1498년 일어난 무오사화는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큰 변곡점이었다. 그는 昭陵復位疏의 논란에 대해 의견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追罪되어, 平安道 寧邊 魚川驛에 杖配되었다. 그 전까지는 비교적 순탄한 관직생활을 하였지만, 어천역 유배기 이후에는 2년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그는 3년간 중앙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외직을 자청해 洪州牧使로 나갔다. 유배기에 그가 남긴 시집 <魚川雜詠>에는 解配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유배지에서의 고독과 쓸쓸함, 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시골마을에서 직접 목도한 백성들의 간난신고가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그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직접 도울 일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였고, 실제 홍주목사 시절 세금징수를 늦추고 백성들의 편의를 봐주는 방식으로 그 같은 고민을 실천에 옮겼다. 50세 이후의 행적을 보면 어천역에서의 유배기간이 그로 하여금 앞으로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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