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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초록· 키워드
세조는 왕이 된 후 집권의 명분과 도덕성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민본정치, 부국강병책, 왕권의 재확립과 『경국대전』이나 『동국통감』과 같은 학술, 문화정비 사업에 진력을 다하였고, 이것은 세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요인이 된다. 세조가 법주사, 상원사 등에 잦은 행차를 한 것 또한 왕권 강화와 민심 수습의 목적이 담겨 있었다. 세조에 대한 평가 기준에 따라 신숙주의 평가는 달라진다. 세조대에 확립된 왕권 강화와 정치적 기반은 성종대에 이르러 조선 전기 정치, 문화를 완성할 수 있는원동력이 되었고, 이러한 업적의 중심에 신숙주가 있었다. 세조 집권 후에 신숙주는 병조판서, 우의정 등을 거쳐 1466년 영의정에 올라 세조를 적극적으로 보좌했다. 신숙주에 대한 세조의 총애는 신숙주를 나의 智將이라 일컫고, 나의 魏徵이라 하면서, 사관으로 하여금 이 말을 기록하도록 한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외교관으로서의 역량은 『해동제국기』의 저술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조선 전기 정치적 안정이 필요한 격동기에 신숙주는 세조가 추구한 중앙 집권과 왕권 강화, 민생 안정과 국방 강화 등의 정책 실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수양대군 시절부터 맺은 깊은 인연과 세조라는 왕에 대한 믿음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초기의 정치적 격동기를 잘 극복하고 빠른 기간 내에 정치적, 문화적으로 튼튼한 기반을 형성한 바탕에 신숙주와 같은 뛰어난 관료학자가 존재했음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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