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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영주 순흥 읍내리벽화분과 어숙지술간(於宿知述干)묘는 삼국시대 신라의 영역 안에서 발견된 벽화고분이다. 서라벌을 중심으로 한 신라의 중앙에서는 제작되지 않았던 고분벽화가 신라의 변경에서는 만들어진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순흥은 장기간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였던 죽령 이남의 요충지다. 신라의 마립간(麻立干)이 순흥 일대를 순행한 것은 변경의 지방 세력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주면서 국경 방어에 최선을 다하게 하려 함이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불교 승려들은 늦어도 5세기 초에는 신라의 변경 지역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묵호자(墨胡子), 아도(阿道) 같은 불교 승려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6세기 전반까지 불교 신앙은 신라에서 국가적 차원의 공인을 받지 못했다. 이런 까닭에 불교 신앙을 가진 지방세력도 6세기 전반까지는 자신들의 새로운 종교신앙을 신라 사회에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순흥 읍내리벽화분과 어숙지술간묘 벽화는 순흥에 전해진 불교 신앙이 6세기에는 기존의 전통적 내세관을 변화시킬 정도에 이르렀음을 알게 한다. 일부 지방세력은 샤머니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죽은 뒤 불교에서 말하는 하늘 세계나 정토(淨土)에 태어나 새로운 삶을 누리기를 바랐고 이런 소망을 벽화로 표현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 증거가 읍내리벽화분과 어숙지술간묘 벽화이다. 제재의 종류나 회화 양식으로 볼 때 읍내리벽화분 벽화에 그려진 역사(力士)나 해 안의 새, 버드나무 등은 6세기 전반에 유행하던 회화기법으로 그려졌다. 어숙지술간묘 벽화의 연꽃이나 천녀(天女)가 그려진 시기는 6세기 후반이다. 두 무덤의 벽화 모두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이후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차례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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