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손춘일 (연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일본학보 제12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45 - 61 (1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한국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은 모두 일본의 침략정책에 대한 저항이였다. 1910년대 한국은 이미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잔혹한 헌병 “무단”통치를 받고 있었으며, 중국은 일본의 “21개조”를 수용하면서 역시 망국의 위험에 빠지고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결속되면서 파리평화회의가 개최되자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모두 이 회의에 많은 기대를 하면서 미국대통령 월신이 제기한 “민족자결”원칙에 의해 한국의 독립문제와 중국의 산동문제가 해결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서발열강들의 이해관계와 일본의 방해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 가자 끝내 “3.1”운동과 “5.4”운동을 촉발시키고 말았다. 공동의 적과 같은 운명의 앞에서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은 서로 성원하고 지지하였다. 상해, 북경 등 중국의 많은 지역의 신문과 잡지들은 서로 앞다투어 “3.1”운동의 소식을 보도하면서 중국인들에게 성원할 것을 호소하였다. 2달 후, 중국에서 “5.4”이 폭발하자 많은 한국인들은 성원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이 운동에 직접 참가하였다. “3.1”운동과 “5.4”운동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아. “3.1”운동이 조선총독부의 잔혹한 탄압을 받자, 평화시위로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한국인들은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가 상해 내지 만주지역에서 많은 반일무장단체를 건립하고 독립운동을 펼쳤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5.4”운동이 북양군벌의 탄압을 받게 되자 중국인들은 더는 북양군벌과 제국주의에 미련을 두지 않고 반제반봉건의 신민주주의혁명을 시작하였다. “3.1”운동과 “5.4”운동은 인제는100년이 지났다. 우리는 이 뜻 깊은 역사사건을 기념하는 동시에 반드시 그것을 참답게 총화하여 동부아의 새로운 미래를 내다 보아야 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