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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외순 (한서대학교)
저널정보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동방학 제4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71 - 30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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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은 ‘청일전쟁(淸日戰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기존의 경우 ‘청일전쟁’의 동기나 원인에 대해서는 ‘동학농민혁명’에서 찾으면서 정작 전쟁과정이나 결과를 논함에 있어서는 ‘동학농민전쟁’과의 관계를 거의 논하지 않고 마치 별개인 것처럼 처리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는 승자 중심의 역사관, 일본 중심의 역사관이 깊이 투영된 결과이다. 이 논문은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 논문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청일전쟁’은, 특히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청과 일본이 주축국이 아니고 조선민중과 청, 그리고 일본의 ‘삼국전쟁’이었다. ‘청일전쟁’의 원인은 조선의 부패나 동학농민혁명이 아니라 조선의 일관된 파병중지 요청과 철군 요청을 무시한 일본의 침략 야욕이다. 일본은 조선 출병과 주둔에 대해 시종 조선의 자주와 개혁을 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정문제로 관여할 바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타국의 최고 주권자가 있는 경복궁을 무단 군사점령 하고, 무력협박 상태에서 각종 친일중심의 개혁논리를 강요하였으며, 심지어 조선이 공식 원조를 요청한 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 자국과 공수동맹조약(攻守同盟條約)을 강제로 체결하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淸)이 전쟁에서 패하고 떠나자 조선민중들은 조국의 주권을 수호하고자 ‘동학농민전쟁’, 곧 ‘또 하나의 청일전쟁’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정부와 화약(和約)을 맺고 집강소의 협치까지 했던 동학농민(東學農民)들이 다시 농민군(農民軍)이 되어서 소위 ‘근대 문명국’ 일본의 신식 무기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문명 일본’은 사실상 양민을 상대로 학살을 하였고, 게다가 조선정부와 농민군을 강제로 상호 적으로 만드는 반인륜을 저질렀다. 결론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은 결코 ‘청일전쟁’의 원인이 아니고, 오히려 ‘청일전쟁’으로 인해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였다. 즉 1차 기포는 내정개혁을 위해 일어난 혁명으로서 내정 문제였고, 2차 기포는 일본이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벌인 조선의 주권을 침탈 만행에 저항하여 일어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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