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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초록· 키워드
고구려의 세 번째 도성으로 알려진 평양에 관해서는 두 가지 해묵은 숙제가 있다. 하나는 427년 평양 천도 이전에 등장하는 ‘평양’의 위치이고, 다른 하나는 427년에 천도한 전기 평양성의 위치이다. 이 글의 목적은 이 두 가지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먼저 전자에 대해서는 313년의 낙랑 축출을 기점으로 그 이전의 평양은 집안 지역으로, 그 이후의 평양은 현재의 평양 지역으로 비정하였다. 단, 고국원왕 13년(343년)에 등장하는 평양동황성의 위치는 알기 어려웠지만, 주목할 것은 ‘移都’와 ‘移居’의 차이를 유념하는 것이었다. 후자에 관해서는 기왕에 안학궁설, 청암리토성설, 대성구역 거점설이 제기되었는데, 안학궁설과 청암리토성설은 각각의 한계가 분명하였다. 특히, 고구려 도성의 구조를 산성+평지성으로 파악하려는 강박의 소산이었다. 이에 따라 이 글에서는 전기 평양성에는 평지 성곽이 없을 가능성과 함께 대성구역 거점설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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