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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윤우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35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5 - 3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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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사씨 세력이 사비기 백제의 최고 귀족 세력으로 정치적 위상을 누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의 재지기반과 관련이 있음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살펴보기 위하여 고고자료와 문헌자료 및 당대 문자자료를 살펴보았다. 이로써 그들이 중앙 정치에 등장한 배경과 웅진·사비 천도 후 최고 귀족 세력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세력기반으로써 금강하구 일대를 관리·포섭하였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었다. 금강하구 일대는 한성기에도 해양 교통로를 활용한 지방 거점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신왕 7년(397)에 대고구려전을 위해 등장한 지방 세력인 좌장 사두는 사씨 세력의 재지기반 성격을 보여준다. 천도 후 금강하구 일대는 도성의 관문으로 격상되면서 중앙의 직접 관리가 필요했고, 사씨 세력의 활동은 한층 부각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입점리 고분군을 통해서도 금강하구 일대가 일찍부터 전략적 요충지로써 백제 중앙의 관심이 높은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비기 지방통치체제 편제에도 반영된다. 금강하구 남단은 屎山郡 아래 3개의 현이 설치되어 관리되었으며, 군산-익산 일대의 유적 배치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사씨 세력은 도성의 관문인 금강하구를 활용해 중국·일본과의 교류에 유리한 입지에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선진문물과 물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백제의 주도층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지닌 사씨 세력은 백제 멸망 후 유민의 활동을 통해서도 존망 받는 인물을 배출할 수 있는 저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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