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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금강사 범종 조성일은 삼일운동 발생 5개월여 만인 그해 8월 10일이었다. 군산의 삼일운동은 호남 최초의 만세 운동이었다. 삼일운동 당시 군산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강한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하였다. 일본인들은 이를 불안해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범종 조성일 이전의 시기에 군산의 삼일운동 피검자들에 대한 재판은 대부분 완료되었다. 따라서 당시 군산 지역 한국인 사회는 좌절의 분위기였고, 일본인 사회는 안도 속에 일제의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고 있었다. 금강사 범종 조성은 이렇듯 극명하게 대립된 군산 지역 일본인 사회와 한국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범종 조성 목적은 군산 지역 일본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것을 자축하며, 일본 천황의 통치가 영원하고, 일본의 조선 식민지 통치가 견고해지기를 염원하기 위해서였다. 금강사 범종 형태는 일본 범종 형태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범종의 용뉴는 쌍룡 형태, 몸통은 직사격형으로 가로 세 부분, 세로 네 부분으로 각각 나누어져 있다. 가로 윗부분에 종유가 표현되어 있고, 중간 부분에 명문이 음각되었다. 명문에는 범종 조성 목적, 발기인 7명을 포함한 140명의 시주자의 시주액과 성명, 범종 주조자의 거주지와 성명 등이 음각되어 있다. 범종 주조자 다카하시 사이지로는 어렸을 때 가난하여 고향 경도에서 불구점 사원으로 있다가, 20세 때 불구점을 개업하고 근검절약하며 사업을 확장시켜 나가, 마침내 48세 때에 주조 공장을 설립하였고, 70세 때에는 경도의 다액 납세자가 되었다. 그가, 그리고 그의 사후 그가 남긴 상점에서 만든 범종들이 일본에서 5개, 한국에서 3개가 각각 현전한다. 이들 범종 형태 역시 일본 범종 형태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금강사 범종 조성 발기인 7명은 농장 지주, 미곡상, 무역업자 등 군산에서 쌀을 일본으로 이출하는 관련 사업 종사자들이었다. 시주자 140명 중에는 금강사 신도뿐만 아니라, 군산 지역 내 다른 사찰 신도, 비불교 신도 등이 상당수 있었고, 1928년 군산의 인물 46명 중에 26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반면에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금강사 범종 조성 행사가 금강사만이 아닌 군산 지역 일본인들의 불교 행사였다는 것을, 그러나 한국인은 제외시켰다는 것을, 당시 금강사가 일본인들에 의해서만 운영되었다는 것을, 군산의 일본인들은 불교계에서조차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였지만 한국인들은 차별하였다는 것을 각각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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