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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이 연구는 기형도의 시세계를 경계의 세계 인식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짧은 생애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촉발된, 신화화에 가까운 문학외적 관심에서 벗어나 기형도의 시세계에 대한 내재적 접근의 일환으로 비롯된 것이다. 기형도의 세계 인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경계인(境界人, marginal man) 이론을 확대 적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경계인이란 일반적으로 다중 문화 속의 혼종적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립적이거나 이질적인 영역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는 자아의 세계 인식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기형도의 시들은 대체로 이와 같이 대립적이거나 이질적인 경계에 선 자아의 세계 인식에 비추어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기형도의 세계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바로 「입 속의 검은 잎」이다. 이 작품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서 선택을 두려워하는 자의 내면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형도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 형상화되어 있듯이 가령 현실과 이상, 이념과 행동, 희망과 절망, 밀실과 광장 등의 경계에서 서성거리는 태도를 보여주는, 경계의 세계 인식은 기형도 시세계를 지탱한다. 이러한 태도에 비추어 보면 기형도 시에서 빈번하게 ‘희망’이라는 시어가 나타나면서도 그것이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포기나 체념의 반어로 읽히는 연유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적 인식은 비극적 사고와 세계 인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기형도의 시는 특정의 진영이나 주장에 몸담기보다는 이쪽과 저쪽의경계에 서서 서성거리거나 머뭇거리는 자아의 내적 고뇌로 읽을 수 있다. 기형도의 시가 미학적으로 미완이면서도 끝없이 다시 읽히는 이유는 그 경계에서의 내적 고뇌가 시대를 초월하여 절실한 공감의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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