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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출헌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민족어문학회 어문논집 어문논집 제84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77 - 11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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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유교문명 국가로의 전환이라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그것의 완성을 위한 유효한 도구의 하나로 언문/훈민정음을 창제했다. 그리하여 韻會 ․四 書와 같은 유교문명의 최고 고전으로부터 삼강행실도 와 같은 유교 교화의 기본서적에 이르는 언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착수했다. 또는 조선 건국의 위엄을 드러내는 「용비어천가」와 같은 樂章이라든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월인천강지곡」과 같은 讚佛歌를 창작하는 데도 적극 활용했다. 그럼에도 세종의 기획은 문종-단종-세조의 시대를 거치며 순탄하게 계승되지 못했다. 비록 세조대에 불경 언해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지긴 했지만, 그건 언문/훈민정음 창제 의도에 비추어 볼 때그 용도가 대폭 줄어든 것이었다. 이처럼 언해의 작업이 지체되거나 축소된 까닭에는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문자의 창제와 그것을 통한 언해가 한문을 독점하고 있던 기성권력에게 불안의 요소로 작용한 것이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문자 권력의 분산은 자신의 기득권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고, 그로 말미암은 반발의 징후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때문에 그들은 중세 보편문어였던 한문을 통해 자신들이 꿈꾸는 중화문명의 길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세조로부터 성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과 학문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그들이 건재한 한 세종이 기획한 언해 사업은 방치되거나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종대의 젊은 新進士類는 이러한 기성세대와 갈등․대립하며 자신의영역을 개척해나갔다. 유교문명의 완성을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성리학적 이념에보다 철저해야 한다고 다짐했고, 그를 위해서는 그것을 사회 저층에까지 보급․ 확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종이 오래 전에 설계했던 유교문명 프로젝트와 그를 위해 활용하고자 했던 언해와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詩學의 전범으로 떠오른 杜詩를 언해하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언해본 삼강행실도 를 간행․보급하는 주역으로 그들이 나섰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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