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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태형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인문사회과학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8권 제1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651 - 68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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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당시기 문인사와 당시 민간의 곡자사로부터 북송대 문인사에 이르기까지 호방 성격의 풍격을 지닌 사의 경향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중당 민간곡자사는 돈황일대에서 유행된 민간가사로서 일찍이 초.성당에, 늦게는 당말에서 오대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불려졌던 노래들이다. 민간인들은 자연에 어울려 살면서 평소 매일 바라보는 자연경물을 소재로 하여 담백한 어조로 淸新하고 曠達 풍격의 호방사를 많이 지었다. 특히 돈황변새사에는 전쟁이나 변새지역의 풍광을 소재로 삼아 애국적인 주제를 담은 豪放하고 豪邁한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晩唐五代는 정국의 불안과 사회의 동요로 인하여 지식인들이 사회문제를 외면하고 일시적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문학도 자신들의 그러한 생활을 위한 봉사자로 활용되었다. 이른바 화간사풍이라 불리는 그 시대 특유의 완약사풍이 발전하였고 상대적으로 호방사풍은 쇠미했다. 북송대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으로 인해 사는 차츰 작가와 작품의 수가 늘어났다. 송대 문인들은 완약적인 서정에 편중하는 사를 지으면서도 그들이 자신의 사를 배척하는 이중성을 지녔다. 소식은 사를 유희적 수단으로 내용이 없는 사로 짓는 것을 각성하고 내용상의 혁신을 이루었다. 이로 인하여 사의 제재와 내용이 다양해져서 호방사가 발전하였다. 종합하면, 사는 완약풍격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완약풍격과 호방풍격을 함께 끌고 안고 출발했으니 사가 애당초부터 어떤 종류의 감정이라든지 다 토로할 수 있는 서정시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만 지식인들의 손으로 들어간 후로는 균질화 내지 단순화된 작자의 경험세계와 그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사의 서정적 기능이 축소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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