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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희(黃宗羲), 고염무(顧炎武) 등과 함께 명말청초를 대 표하는 3대 사상가 중 하나인 왕부지(1619-1692)가 처했던 시기는 명이 멸망하고 이민족에 의한 지배를 받게 된 때로, 왕부지와 같은 유학자들 에게 있어서는 공자가 처했던 춘추전국 시기에 버금가는 “예악붕괴”의 시대였다. 왕부지는 명나라 멸망이후에는 형양의 석선산(石船山)에 은 거하여 명의 멸망원인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명이 멸망한 이유가 밖(이민족의 침략)이 아니라 안(명의 체제적 원인)에 있다는 점을 확신 하였으며, 그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전제적 군주제에 있다고 생각했다. 황제일인에 대한 권력의 집중과 독단,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된 폐해들 을 비판하면서, 왕부지가 지향하였던 것은 민본을 중심으로 한 공적 정 치의 회복이었다. 즉 민의 생사를 책임질 수 있는 ‘공천하(公天下)’의 실현이야말로 그의 궁극적 정치목표였다. 황제의 권력전횡을 막기 위해 서는 그는 무엇보다도 중앙에서의 분권(分權)과 지방에서의 분통(分統) 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분권을 위해서는 군주, 재상, 간관의 상호협력 적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환상위치(環相為治)”가 필요하며, 분통을 위해 서는 지방의 자치적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왕부 지의 사상은 나름의 사상적, 시대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민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무소불위 로 여겨지던 황제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사상적 정당화라는 측 면에서 상당히 개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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