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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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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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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3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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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소도와 제의에 대한 접근은 삼한사회를 비롯한 한국 고대의 신앙과 제의, 나아가 초기국가의 정치 및 사회상을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근대 이후 진행된 종교·민속학적인 연구는 소도의 ‘立大木’ 기록에 주목하여 동아시아 수목숭배의 범주에서 접근했으며, 소도는 立木이나 제단, 제장을 의미하는 종교적 신성 공간 등으로 이해했다. 이후 역사학적인 연구가 더해지면서 소도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그것이 포함되는 정치체계 속에서 이해하거나 한국 고대의 사회발전에 따른 제의의 변천과정에서 접근하여 소도의 역사적 실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탐색하게 되었다. 문헌상 전통적인 소도 인식의 발단은 『삼국지』 한전에서 浮屠와 유사하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중국의 초전불교 인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소도는 『진서』가 편찬되었던 7세기 무렵에는 서역불교와 결부시켜 이해했다. 그 뒤에도 중국사서는 소도를 불교 관련 사실로 견고하게 전승되었지만, 다른 한편 大木을 세워 제사한 사실에 주목해서 만주의 입간제사에 견주어 이해하기도 했다. 신라 말 최치원은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에서 소도의식을 불교제사로 여겨고 백제 불교 전래의 사례로 제시했다. 이는 조선후기 학인들에까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를 삼한시기로 소급하는 근거로 삼았다. 소도 인식은 사찰 또는 불탑 등 불교적 변용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민간의 신간제사로도 상정하여 근대 이후 솟대 등의 민간신앙과 관련하여 주목받았다. 『삼국지』에 보이는 동이제족의 제사의식은 그들이 처한 자연환경과 사회적 형편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했다. 삼한 諸國 가운데 소국 단위에서 이루어진 시조 신앙은 대국 단계에서 전개된 소도 신앙의 천신 제사로 이어진다. 이후 부여나 고구려와 같이 성장하면 ‘국중대회’ 차원의 제천의례에 그 맥이 닿을 것으로 상정된다. 본래 삼한의 소도 신앙은 읍락 단위의 부락제에서 발전한 것으로, 대국 단계에 주변 소국이나 읍락을 통합하여 별읍으로 편제하면서 대두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국읍의 천군은 별읍에서 귀신을 섬겼던 인물과 구분할 수 있으며, 자연히 천군은 국읍에서 상위의 天神 제사를 주관했다면, 별읍인 소도에서는 따로 巫的 존재가 하위의 귀신 제사를 이끌었을 법하다. 귀신의 실체는 국읍의 천신과는 다른 존재로 별읍에서 신앙되었던 특정 지배집단의 조상신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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