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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희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51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451 - 48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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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유입된 한역서학서에 담긴 서양의 학술 즉 서학(西學)은 내부를 변화시킨 사상적 변수이자 조선 후기의 지적 상황을 조망하는 하나의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성호 문하의 기호 남인 중 일부는 이 변화와 그에 따른 동요를 사상적, 사회적 위기로 인식하고 이에 개입하고자 했다. 서학에 개방적이었던 스승 성호와 달리 서학에 대한 지적 긴장을 최대치까지 높인 하빈 신후담의 최초의 척사서 「서학변(西學辯)」 외에도 천주교에 대한 공식적 탄압이 시작된 후 완성된 순암 안정복의 척사서 「천학문답(天學問答)」은 당시 서학에 대한 남인의 경도에 대한 경계를 담고 있다. 19세기 초반 서학에 이단이라는 국가적 낙인이 찍힌 후 안정복의 척사론은 기호 지역을 떠나 영남 남인들 사이에서 도통론과 벽이단론이라는 방식으로 재생산되었다.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것은 병호시비 등을 통해 지적 권력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대산 이상정 계열의 학자들이었다. 류건휴는 스승 손재 남한조가 안정복의 「천학문답」을 검토하여 작성한 두 편의 척사서 등을 활용하여 『이학집변(異學集辨)』 권6의 「천주학」 부분을 완성한다. 서학 자체 뿐 아니라 남인의 서학 비판까지 논점화하는 류건휴의 척사론은 상제를 인정하고 서학의 기술적 측면을 긍정했던 기호 남인의 사상적 특징과, 이를 정통 퇴계학의 입장에서 비판함으로써 학술적 정통성과 지적 권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영남 남인의 문제의식을 동시에 보여주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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