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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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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실학학회 한국실학연구 한국실학연구 제29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7 - 4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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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크게 훈민정음의 유통 및 담론과 관련하여 왕실과 당시 사대부층의 거시적인 언어 및 문자 의식을 당시 지식 지형의 맥락에서 탐색해 본 논문이다. 조선후기는 ‘훈민정음’ 담론과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의 맥락이 있었다. 실록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그 기능에 맞춰 ‘언문’으로 이해하고 사용하고 유통한 흔적을 실록 텍스트에서 발견한다. 이 때 훈민정음의 주체는 왕실이었고 그들에게 훈민정음은 그 시대 사대부층이 고민한 ‘훈민정음’, 혹은 ‘언문’과는 그 인식 태도가 달랐는데 그것은 훈민정음의 ‘제도적 사용’이라는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 반면에 조선후기 사대부층이 인식한 훈민정음은 ‘천하의 성음(聲音)’이자 표음성을 갖춘 보편 문자이고 반절법을 극복할 수 있는 한자음 표기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이었으며 ‘한자’보다 뛰어난 ‘국자’의 인식이 자리잡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그들의 언어․문자 의식은 전부는 아니었고 한편으로 여전히 한문으로 의사를 표현했던 그들에게 훈민정음은 관념적으로만 높이 평가되었던 대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의 학자들은 한문과 훈민정음이 양과 음의 세력으로 대립할 때 최소한 둘 사이의 공존 혹은 병존을 언급할 수는 있었어도 한문을 적극적 부정할 수 없었고 그 안에는 한문 혹은 중국어 중심의 동문주의(同文主義)가 있었다. 한편으로 그 양의 세력이 위축될 것이라는 근대지향적 인식의 단초를 보여 준 학자들의 인식이 포착되지만 조선후기 훈민정음에 대한 태도는 거기까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는 훈민정음 담론이 착종(錯綜)하는 혼돈의 시대였고 훈민정음 담론은 다양해졌으나, 그것을 새로운 언어 문자 생활의 실천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지식인 집단에게 다소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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