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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인도 항로 개발이 지중해 교역의 쇠퇴를 초래했고 그 결과 16세기 서유럽 교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갔다는 견해를 수정하려고 한다. 우선, 일부 역사가들이 지적했듯이 포르투갈의 인도 항로는 16세기 지중해 향신료 무역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향신료가 지중해의 중요한 교역품목이었지만 면화, 곡물, 명반, 직물 산업에 필요한 원료 등과 같은 상품들도 대량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인도 항로로 인한 향신료 무역의 위기나 감소가 지중해 무역 전체의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세 말 지중해 교역을 주도했던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여러 위기, 특히 포르투갈의 인도 항로 개척과 동지중해에서의 오스만의 팽창이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제노바는 상권을 이베리아 반도로 옮김으로써 동지중해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했고, 국제 금융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상황에 대처했다. 베네치아는 수송과 중계무역이라는 기존의 활동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분야인 직물 산업을 발전시켰다. 특히 베네치아의 모직물과 견직물 산업은 16세기 동안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다.
15세기 후반 이후 대서양 선박들은 지중해 진출을 모색했는데 이는 지중해의 경제적 성장으로 상업적 기회가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영국과 동 지중해 사이의 상업 교류는 1581년 레반트 회사가 설립된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더 많은 영국 선박들이 지중해를 드나들었고 최종적으로 영국 선박은 지중해 수송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결론적으로 포르투갈이 인도 항로를 개척한 이후에도 지중해 무역이 무너진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지중해는 이전 세기와 마찬가지로 16세기에도 여전히 경제적 문화적 교류의 장으로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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